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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5-12-04 09:11
대수맥님의 앵무새 죽이기_낙랑군의 역사_2_1편
 글쓴이 : 최고관리자
조회 : 5,486   추천 : 0  

■■■■■■■■■ [앵무새 주장 2] ■■■■■■■■■

(첫 번째 부류-무식한 주장)

첫 번째 부류로서 4군의 이름이 없으니 동방변군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무식한 주장의 논리는 이렇습니다.

조선 정벌은 사마천 생전에 있었던 일이니 현장 목격자라고 할 수 있다. 
그런 그가 4군의 명칭을 기재하지 않음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따라서 4군은 설치되지 않았다. 
아, 정말 한심한 논리입니다.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사기]도 안 읽어본 거죠. 
사기 [남월열전]을 볼까요?

남월은 평정되었다. 
마침내 이곳에 9개의 군을 설치하였다.

네, 보시다시피 군명은 없습니다. 
남월정벌은 BC 112년-BC 111년간 이루어져 사마천 생존기간에 있었던 일입니다. 
위만조선 정벌에 왔던 누선장군 양복도 참여하고 있습니다. 
4군을 설치했다고 적었으면 그만이지 군명 따위를 적을 필요는 없었습니다. 
적었으면 더 좋긴 했겠죠. 

참고삼아 위만 조선이 멸망했던 그 해에 [사기]를 쓴 사마천이 태사공의 지위에 올랐습니다.

■■■■■■■■■■ [논증論證 2] ■■■■■■■■■

(군郡을 설치했으면 그만이지 이름을 적을 필요가 없다?)

이 논리라면 한漢이 설치한 군郡들은...아니 변군邊郡으로 축소해서 말해도 군명郡名 따위는 있으나 없으나 상관없다. 

과연 그럴까? 
한번 살펴보자. 
결론은『아니올시다』이다. 
구체적인 사례事例가 있다.

[하서河西의 4군四郡]

무위군武威郡*장액군張掖郡*주천군酒泉郡*돈황군敦煌郡

[변새邊塞의 6군六郡]

상군上郡*삭방군朔方郡*오원군五原郡*운중군雲中郡*정양군定襄郡*안문군雁門郡

[새외塞外의 6군六郡]

대군代郡*상곡군上谷郡*어양군漁陽郡*우북평군右北平郡*요동군遼西郡*요서군遼東郡

[구舊 하남河南의 6군郡]

농서군隴西郡*북지군北地郡*서하군西河郡*천수군天水郡*안정군安定郡*무도군武都郡

[남변南邊의 7군郡]

남해군南海郡*작림군爵林郡*일남군日南郡*창오군蒼吾郡*교지군交趾郡*합포군合浦郡*구진군九眞郡

그렇다면 왜 유독 남월南越과 조선朝鮮의 군명郡名만 없을까? 
정말로 [위에서 든 북방과 서역과 남변과는 달리 이곳만큼은 그냥 4개의 군을 설치했다고 적었으면 그만이지 특별히 군명 따위를 적을 필요는 없었던 것일까?] 

아니면 둘 사이에 어떤 공통적인 사정이나 군명郡名을 기록할 수 없는 진정한 이유가 있었을까? 
대답은 명쾌하게 [그렇다]이다.

❶ 잘 아시다시피 [동월東越]과 [남월南越]은 완강하게 저항하다가 BC 111년에 복파장군伏波將軍 노박덕路博德과 누선장군樓船將軍 양복楊僕에게
남월南越이 횡해장군橫海將軍 한열韓說에게 동월東越이 무너져 한열韓說은 그 공功으로 안도후按道侯에 봉해졌다.

그리고 월越에서 투항한 사람으로 <건성후 오>가 안휘성의 [개릉후]로 옮겨지고
<연후 오양>은 산동성 북해군인 [북석후]로 멀리 이봉移封되었으며
동월東越 장수 <다군>이 강소성 무양시의 [무석후]에 임명되었다.

❷ 또한 한무제漢武帝가 결국 뜻을 이루지 못할 즈음 뜻밖에 귀부歸附한 만조선滿朝鮮의 반란 세력들 가운데
평주후平州侯가 된 협唊(혹 왕겹王唊)은 조선 장수로서 한漢 나라 군사에게 항복한 공을 인정받아 후侯가 되었다. 

추저후萩菹侯로 된 염䧔(혹 한도韓陶)은 조선의 재상으로서 한漢 나라에게 포위되었을 때 항복한 공이 있으며
획청후澅淸侯가 된 삼參은 조선의 니계상尼谿相으로서 아랫사람을 시켜 왕王 우거右渠를 살해하고 한漢에 항복한 공으로 후侯가 되었다.

기후幾侯가 된 장長(혹 장각長珏)은 조선의 왕자로서 한漢의 군대가 조선을 포위했을 때 항복하였고
날양후陧陽侯가 된 최最는 그의 아비가 조선의 재상宰相 노인路人이었는데 한漢에 먼저 항복하고 도중에 죽은 자의 아들이었다
(사기 권20 건원建元 이래 제후년표諸侯年表)

우리는 두 동방 세력들이 그토록 강력한 위력을 보이며 끈질기게 맞선 상황과
한무제漢武帝가 집요하게 공략하여 명분을 세우려고 하였던 까닭이 무엇이었을까? 를 분명하게 인식해야 이 의혹을 풀 수 있다. 

바로 여기에서 내부 반란을 일으켜 귀부歸附한 만조선滿朝鮮의 인물들을 그대로 봉封하여
한漢의 간접적인 영향권 안에 둔 사유事由와 힘이 달려 투항한 일부 양兩 월越의 중요한 인물들이
결국 후侯라는 명목으로 본향本鄕에서 멀리 봉封해지고 말았는지 확연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러니 군명郡名이 제대로 적혀지지 않을 수밖에 없다.

1) 한족漢族의 기록에『서남이西南夷는 옛 오월吳越의 후예로 (동방족과 똑같이) 머리를 북상투로 틀어 올린다』는 설명처럼 분명한 우리 민족이었다. 
만조선滿朝鮮의 격돌 이유와 맥이 닿는 부분이다.

2) 지역적으로 절강성浙江省과 복건성福建省에 근거지를 둔 회이淮夷*사이泗夷*서이徐夷*람이藍夷들이다. 
이들의 강인한 씨족 통합성과 결코 굽히지 않는 투쟁성은 이미 필자筆者가 전술前述한 바와 같이

진晋 시기에 이르러서도 독자적인 존재를 부각시키는 사실로서 증명된다
(진서晋書 권3 무제기武帝紀 함령 2년-영평 원년 조條의 복건성福建省 등의 동이東夷 190국 내부來附) 
이 역시 우리 단군조선족의 독특한 성향임을 전술前述하였다..

■■▶ 사족(射族-여족畬族*서족徐族)들은 응집성과 집단에 대한 친밀성이 강해 분쟁이 일어나면 죽기 살기로 싸워(계투械鬪) 관官으로서도 말릴 수가 없다.

■■▶ (BC 138) 태위 전분이 무제에게 말하기를 월인끼리 서로 싸우는 것은 오랜 관습이고 반란도 빈번하여...
진나라 이래 포기하고...(군현으로)...삼지 않았다(自秦時弃弗屬)고 진언進言하였다. 
<사기 권114 동월열전 건원 3년 조>

❶ 지금도 절강성浙江省 여수시麗水市를 중심으로 [경령여족자치현景寧畬族自治縣]와 복건성福建省에 [사경인射(畬)耕人]으로 대부분 남아 있다. 
이들은 여전히 한족漢族과는 다른 민어閩語*월어越語(한자고금음표)를 사용한다. 

❷ 그 외에도 절강성浙江省 월주越州(예산국穢山國이 있었다-태평환우기 권90 회계군 조 예산군국지)와
구주(衢州-방여승람 권24 절강성 구주 사묘 조)와 태주台州(여지기승 태주부)*온주溫州(평양平陽이 있다)에도 거의 독자적인 많은 定着村들이 존재한다.

■■▶ 射耕人本福建人射地而耕也子孫盡閩語  <북송北宋 영외대답嶺外代答 권3 외국문 5민 조>

그렇다면 왜 [양兩 월越과 만조선滿朝鮮]의 장상將相들에 대해서만 한漢의 조치가 색달랐으며 군명郡名조차 밝히지 못하였을까? 
이 부분을 놓치면 [앵무새]와 같은 천박하고 졸렬한 수준의 주장이 나오게 된다. 
따라서 필자筆者가 그 까닭을 면밀히 분석하면서 설명하려 한다.

1. 만조선滿朝鮮 지역의 경우

한漢의 만조선滿朝鮮 경략 다시 말해 [조한전역朝漢戰域]은 <사마천司馬遷> 자신도 냉정히 인정 한 바 대로이다. 
다시 말하여 한족漢族의 기록을 장님이 코끼리 다리 더듬듯 해 보아도 명백히 패배한 전쟁이다. 

한번 살펴보자. 
[사기史記 조선열전朝鮮列傳]의 <조한전쟁朝漢戰爭>에 등장하는 주요인물은 모두 여섯 사람이다. 
먼저 무제武帝의 사신使臣이었던 섭하涉何와 공손수公孫遂와 위산衛山이 있다.   

어떻게 되었을까? 
섭하涉何는 즉각 반격한 만조선군滿朝鮮軍에 의해 참패하여 살해되고 나머지는 임무를 완수하지 못했다는 죄목으로 다 죽었다. 
전쟁에 이겼다는데 공功은 없고 목만 날아갔다.

다음으로 좌장군左將軍의 부하였던 졸정卒正 다多가 있다. 
어떻게 되었을까? 
출전出戰한 장수 가운데 제일 먼저 죽었다. 

전사戰死했을까? 
아니다. 
굴욕적인 패전敗戰을 하고 겨우 목숨만 살아 돌아오니까 참수형斬首刑에 처해졌다.

해군海軍을 이끌던 누선장군樓船將軍 양복楊僕은 부하들을 전부 물귀신 만드는 것도 모자라
양兩 월越을 제압하면서 위세를 떨쳤던 누선樓船마저
파선되거나 불태워지는 곤욕을 맛본 후 산중山中으로 도망가 숨어 목숨을 건지는 치욕을 맛보았다
(遁山中拾餘日  산 속에 10여 일 동안 혼자 몸을 피해 도망 다녔다 -사기 조선열전) 

육군을 거느린 순체荀彘도 마찬가지였다. 
한마디로 무참히 궤멸되어 장졸將卒들이 대부분 다 죽었다.

전쟁이 끝나고 나서 논공행상論功行賞을 하는데 두 사람에게 상賞이 내려졌을까? 
천만의 말씀이다. 

[사형死刑]이 내려졌다.  그 중에서도 가장 극악한 형刑인 기시(棄市- 사람을 죽여 사지를 찢어서 장안長安의 사대문에다 걸어 놓는다)에 처해졌다.

장수將帥와 사신使臣을 불문하고 [전원 처벌*전원 처형]이라는 이런 승리가 있을까? 
이제까지의 모든 기록을 들추어보아도 이런 전승戰勝은 보지 못했다. 

반면에 패배했다는 만조선滿朝鮮은
결전의 승패를 가름했던 [단군조선계] 장상將相들이 모두 그 지역의 새로운 통치자로 군림하고 있다. 
 이런 해괴망측한 전역戰役의 결과를 다른 어디에서 보았다면 필자筆者에게 꼭 제시해주기 바란다.

더욱 재미있는 사실은 <사마천司馬遷>조차 스스로 조선朝鮮에 패했다고 기술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사기史記 조선열전朝鮮列傳] 제일 마지막에 [태사공太司公 왈曰]이라는 대목을 적었다. 

한마디로 스스로 적은 역사기록에 대한『서평書評』이다. 
내용을 보자.

■■▶ 荀彘爭勞 與遂皆誅 兩軍俱辱 
순체가 공로를 다투다가 공손수와 함께 죽임을 당하고 수륙양군이 모두 욕을 당했다. 
<사기 조선열전 태사공 서평>

이런 치욕스런 상황을 맛보면서 엉거주춤하고 있는 그 때에 만조선滿朝鮮의 장상將相들이 스스로 귀속歸屬해 온 것이다. 
그리고 한무제漢武帝는 굴러온 떡을 곱게 자기 쟁반에 담은 것이다. 

때문에 한漢이 그들을 제 마음대로 처리하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후侯로 봉封하면서
국가 통치 집단만 제거된 만조선滿朝鮮의 강역에 제대로 된 군郡조차 설치하지 못한 결정적인 원인을 제공했다.

2. 양월兩越의 경우

월越 지역은 해상海上 활동에 익숙하였던 해양족海洋族으로서 진화進化한(오월吳越의 경우를 보라) 동방계東方系로서
이들을 그대로 안치安置하였을 경우 잔존 세력들과 손을 잡고 언제라도 다시 일어 날 꺼지지 않는 불씨를 안고 있는 위험성이 있었다.

특히 양兩 월越 지역의 민족은 [람후藍侯-서언왕徐偃王]으로 이어진 오랜 동방계 국가라는 역사적인 전통으로
한 때 36개의 소국小國에 이르렀다는 기록이 나올 만큼 확고하고 강력한 세력이었기에
주周 목왕穆王과의 쟁패전爭覇戰을 비롯하여 진시황秦始皇의 [민호화정책民戶化政策]이라는 철퇴를 맞은 핵심 견제 대상이었다.

여기에다가 결정적으로 두 지역의 장상將相들에 대한 후속조치(강제이봉强制移封과 구토분봉舊土分封)가
한漢이 격돌한 다른 어느 변방邊方 세력과도 확연하게 달랐음을 알려주는 핵심 코드가 있다. 

❶ 양兩 월越은 오래도록 저항하다가 정벌되었으며
만조선滿朝鮮은 전쟁 외적인 국면 즉 내부 분열로 무너졌다는 점이 다른 지역의 변군邊郡 상황과는 아주 다르다.

4) 양兩 월越과의 전쟁은 표면적으로는 한漢이 승리했다고 자부하였지만 실질적으로는 미未 점령지역이 적지 않았으며
만조선滿朝鮮 침공은 철저하게 굴욕을 당한 실익實益이 없는 전역戰役이었다.

다시 말해 한무제漢武帝는 동월東越과 남월南越을 공략하면서
이들에게 재기할 기반으로서 기능하게 될 복건성福建省은 대부분 점령하지 못했으며 때문에
충성 맹세만 믿고 월越의 장상將相들을 그대로 봉封하면
후일 걷잡을 수 없는 사태가 벌어질 것을 알고 그러한 조치(이봉移封)가 이루어졌던 것이다.

❶ 진시황秦始皇은 동해왕東海王 요와 민월왕閩越王 무제를 폐하고 복건성福建省에 민중군閩中郡을 설치했다고 기록했다
(사기 권114 동월열전).

❷ 그러나 동해국(東海國-동구국東甌國)은 후한後漢 영구 3년의 장안현 동구향東甌鄕(진시황 무렵 회계군 영구현이었다)이었으며
[절강통지浙江通志 권4 온주부溫州府 조]에서도 한漢의 회포回浦라고 밝혀 놓았다
(후한서 권22 지리지 회계군 조).

❸ 또한 민월국閩越國도 옛 야현冶縣(민월閩越)인데 후한後漢 광무제光武帝가 개칭한 온주溫州 지역인 회계군會稽郡 장안현으로 나온다.

즉 [동해국東海國 회포回浦]와 [민월국閩越國 야현冶縣]이 모두 절강성浙江省 남부인 온주시溫州市 영령현과 장안현이었다. 
아울러 진시황秦始皇이 복건성福建省에 [민중군閩中郡]을 설치했다면 마땅히 전한前漢과 후한後漢 시기까지
복건성福建省은 [민중군閩中郡]이어야 함에도 [전한서前漢書*후한서後漢書 지리지地理志]에 전혀 보이지 않는다.

▷ 기록을 보면 오吳가 처음으로 복건성福建省 북부에 건안군建安郡을 그리고 진晋이 남쪽에 진안군晋安郡을 설치하였음을 보여준다.

▷ 그래서 [산해경山海經 권10 해내남경]에서도『구(온주溫州)와 민(복건성福建省)은 바다에 있다.  甌居海中閩在海中』이라 하여
한족漢族의 영역이 아니어서 육로陸路조차 열리지 않았음을 알려준다.

결론적으로 [동월東越*남월南越 중 유력한 장상長相들에 대한 봉지封地 이전移轉이란 분리주의 정책]은
아직 건재한 세력으로 남아 있던 복건성福建省의 동방계 잔여부족을 비롯해
그 당시에도 무시 못 할 해상 세력으로서 남해南海 바다를 주름잡고 있었던 [동제인東鯷人]들과 알게 모르게 결탁할 경우
한漢으로서는 속수무책으로 그 지역을 다시 내주게 될 위험성이 상존常存하고 있음을 절감했기에 나온 궁여지책이었다. 

이런 처지에서 무슨 제대로 된 군郡을 설치할 겨를이 있겠는가? 

※ [동제인東鯷人]은 지명이 아니라 세력 집단이다. 
강력한 해상집단으로 [동쪽의 메기 떼]라고 낮추어 불린 이들이 남해南海의 섬을 장악했기 때문에
근거지인 주산군도舟山群島를 [메기들 구렁-제학鯷壑]이라 했고 육지와의 연결 지역은 [바다거북인 오자산鼇子山-오파鼇波]였다.

■■▶ 會稽海外有東鯷人分爲20餘國以歲時內獻  <한서 권하卷下 지리지>

■■▶ 鯷壑東鯷人居海中洲鼇波俱海也有也  <위략魏略>

3. 귀부歸附하거나 투항投降한 인물에 대한 문제


그리고 복속한 인물에게 그 지역을 봉지封地로 주는 경우는
대부분 항복하거나 투항投降 또는 신속臣屬되려는 지역의 왕王과 군후君侯들에게 즐겨 사용하는 방식이다. 
제국帝國의 안정과 유지 그리고 변방邊方의 소란을 약화시키기 위한 이이제이夷以制夷의 목적이나
새로 획득한 강역에 대한 반발을 잠재우기 위해 왕후王侯를 봉封해주거나 그대로 인정해주는 정치적인 책략策略으로 즐겨 사용되고 있음을 본다.

1) 제갈량諸葛亮은 남만南蠻을 정벌하고 맹획孟獲을 그대로 왕에 앉혔다. 

2) 항우項羽가 진秦을 멸滅하고 [관중關中]을 3분分하여 진秦의 항장降將인 <장한章邯>을
옹왕雍王에 <사마흔司馬欣>을 새왕塞王에 <동예>를 상군上郡의 책왕翟王에 봉한다.

3) 유방劉邦은 연燕의 항장降將 장도臧茶를 연왕燕王에 정벌한 조趙의 조오趙敖를 조왕趙王에 투항한 한韓 양왕襄王의 서손庶孫인 신信을 한왕韓王에 봉하고 있다.

4) 전한前漢은 곽거병霍去病의 원정 때 감주甘州의 혼야부渾邪部와 양주凉州의 휴도부休屠部 수령이 항복하자 그 지역의 번병藩屛으로 봉했으며
장군 이광리李廣利도 <페르가나>를 정벌하고 충성을 맹세한 왕王을 그대로 인정했다.

5) 흉노匈奴의 질지郅支는 오손烏孫을 격파한 뒤 호게왕呼揭王과 견곤왕堅昆王의 복속을 받아 그 지역에 그대로 봉封했다. 
흉노匈奴가 분열하여 남흉노의 비比가 투항하자 광무제光武帝는 내몽골(고비 남부-산서 북부-감숙)의 지배자로 인정해주었다.

6) 후한後漢의 사마司馬 반초班超가 천산天山 부근 고성古城의 거사(車師-투르판) 정벌 때 투항한 안득安得과 신속臣屬한 구자왕(龜玆王-쿠차) 건建의 지위를 인정해주었다. 
<누란樓蘭> 남쪽의 <선선왕鄯善王-롭 노르>도 같았다.

7) 조조曹操는 열하(熱河-다라이 노르Darai Nor 와 시라무렌Siramuren 지역)의 오환烏丸을 격파하면서
이를 견제하려기 위해 굴복한 남흉노南匈奴의 선우單于에게 그들 지역의 지배권을 인정해주었다. 
조비曹丕 무렵에는 선선鄯善*쿠차*호탄(우전于窴)의 왕王이 신속臣屬하자 그대로 봉해주었다.

8) 남조南朝 양무제梁武帝는 동위東魏의 장군으로 투항해온 후경侯景에게 하남河南 13주州의 지배를 그대로 인정하는 하남왕河南王으로 봉한다.

9) 돌궐突厥의 부민(토문土門)에게 격파되어 <아나괴阿那塊>가 자살한 유연柔然은 북제北齊의 보호로 카칸(가한可汗)의 지위를 이으면서 번병藩屛이 된다.

10) 동돌궐東突厥이 분열하면서 밀려난 돌리突利를 수隋의 양견楊堅이 그들의 지배권을 인정하며 오르도스 지역의 번병藩屛으로 삼았다. 
양제煬帝도 투르판 왕王 국백아麴伯雅를 이런 방법으로 귀속시켰다.

11) 당태종唐太宗은 복속한 카라샤르(언기焉耆)에 군주君主의 동생 율파준栗婆準을 쿠차에 야브구를 카쉬카르(소륵疏勒)에 위지尉遲 왕족을 호탄(우전于闐)에 복도신伏闍信을 봉했다.

12) 당唐은 서돌궐이 붕괴하면서 타쉬켄트 지역을 통치한 사괴射匱와 일리 지방의 처라處羅가 다투어 고개를 숙이고 오자 이들을 그대로 봉封해주었다.

13) 오대십국시대五代十國時代 후당後唐은 남방 번진藩鎭인 회남절도사淮南節度使 양행밀楊行密이 신속臣屬하자 오왕吳王에 봉한다. 
이어 958년에는 후주後周 세종世宗에게 패해 국주國主라는 작위爵位를 받고 지배를 인정받는다.

14) 서하西夏는 송宋이 건국되자 귀부歸附해 충성을 맹세하고 조씨趙氏 성姓을 받아 정난군(定難軍-섬서성陝西省과 내몽골 일부)을 관할하는 서평왕西平王으로 봉해졌다.

조금만 문헌 기록을 살펴보아도 부지기수인데 왜 유독 이런 조치를 만조선滿朝鮮과 월越에게는 적용을 거부하는가? 
필자筆者는 아무리 보아도 이해할 수 없다. 
아울러 이러한 조치나 군명郡名조차 기록하지 못한 이유를 설명해 줄 또 하나의 결정적인 사료史料를 소개하고 이글을 맺으려 한다.

(계속)


최고관리자 15-12-04 09:39
 
운영자도 사기조선열전을 해설하였지만
대수맥님의 종합 분석능력에는 미치지 못한다.

* 사기 조선열전 해설본 바로가기_108페이지
http://cooreenet.cafe24.com/bbs2/history.htm?bo_table=pds_must&bo_cate=6&wr_id=12&page=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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