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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5-07-01 09:12
(대수맥님의 앵무새 죽이기_5편) 한심한 앵무새의 환단고기 비판을 보고...
 글쓴이 : 최고관리자
조회 : 4,274   추천 : 0  

* 아래 자료는 대수맥님이
  인터넷 상 독버섯 매식소굴 앵무새 매식자 사이트[ http://orumi.egloos.com ]를 응징하기 위해 만든
  대수맥님 사이트에 올린 반박자료입니다.
  황당괴설 매식자 주장을 깨부순 대수맥님의 글을 감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 대수맥님 글 전체보기 : 대수맥님은 現 고위공직에 근무하시는 이시대 인터넷 역사지킴이 입니다.
http://www.coo2.net/bbs2/history.htm?bo_table=dsm_board&bo_cate=2
http://blog.daum.net/nero1003


[떡밥을 흘린 논제 1]  환단고기는 어떤 책?
(스스로 [잡학다식]이라고 고백하는 한 <앵무새>의 [환단고기] 비판을 보고)

* 앵무새 집 : http://orumi.egloos.com/
* 앵무새 기사 : http://news.nate.com/view/20080901n22320
* 앵무새 (인터넷상 활동하는 매식자을은 거의다 멸종되었는데 생존한 유일한 매식소굴 근거지다)
  : http://www.aladin.co.kr/author/wauthor_overview.aspx?AuthorSearch=@965490

[떡밥 1]  환단고기는 어떤 책인가?     

(앵무새) 우리나라 고대역사를 다룬 책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의견) 
우리나라 고대역사 그것도 [식민강단사학계]에서 신주단지처럼 모시는 두계 이병도사관은 물론
<삼국사기]가 잘라먹은 상고의 역사나 [삼국유사]가 신화와 전설로 만든 우리 민족의 원뿌리
(분명히 외계에서 별안간 진입했거나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민족이 아닌 이상)를 밝히는 책이다. 
그래서 일제를 거쳐 오늘에 이르기까지 이르는 일관적인 [모화사대사관]의 제거되어야 할 표적으로
극성스런 눈총을 받아 묻히고 없애지고 숨겨진 것이다.

[떡밥 2]  환단고기는 누가 쓴 책인가?

(앵무새) 환단고기는 편집된 책으로 그 안엔 네 가지 책이 들어있으며 각기 저자가 명기되어있다. 
하지만 환단고기가 공개되기 이전에 그 안의 내용을 인용한 책은 없다. 
이전 기록에 그 제목이 알려져 있는 경우는 있으나 비교 검증할 매용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의견) 
좀 더 자세히 말해주겠다. 
이 책은 짧게는 일제가 길게는 중화사관에 물든 자들이 말살시키려고 한 우리나라 고대 사서들을 묶어서
독립운동가이신 <계연수> 선생이 독립운동가이신 <홍범도> 장군과 <오동진>의 지원을 받아 만들었다. 
일부러 가벼이 흘려보내려고 그러지는 않았으리라고 보고 네 가지 수록된 저본을 밝혀둔다. 

<삼성기>는
신라 승려인 안함로와 행적이 확실치 않은 원동중이 쓴 우리민족의 시발(원리)인
환인*환웅*18세 단웅까지의 우리 상고역사를 압축시켰다. 

<단군세기>는
고려시대 행촌 이암선생이 고조선 1세 단군왕검부터 47세 고열가까지의 주요 사건들을 편년체로 편집했다. 
우리가 중국 사서를 보고 의문시하던 고구려 역사 900년설을 뒷받침 할 사료연구 가치의 실마리를 던져주고 있는
고려 말 학자 범장이 저술한 <북부여>기와 그야말로 <환단고기>의 압권을 이루는
연산군과 중종 때의 학자 이맥이 전한 <태백일사>인데
환국에서 고려에 이르는 모든 일들을 담고 있으며
특히 삼한관경본기의 마한 및 번한세가는 아주 중요한 연구자료들이다. 

이로서 왜 그렇게 집요하도록 이 책에 신경을 쓰는 지 이쯤에서 여러분들은 잘 알게 될 것이다. 
다시 말해주겠다. 
지금까지 수차에 걸쳐 고적들이 말살되고 훼손되는 가운데
환단고기의 사료적 가치는 이미 여러 가지 방식으로 입증되고 있으며
앞으로 지속될 비교연구를 통하여 확인될 것인데
그걸 인정해서는 안 되는 어떤 사람들이 우리나라 역사학계를 이끌어 가고 있기 때문에
이 책 이야기만 나오면 정신 줄을 놓고 달겨든다.

위 언급 중에 대단한 발견처럼
<환단고기가 공개되기 이전에 그 안의 내용을 인용한 책은 없다>고 말하는데
정말로 왜 그랬는지 중요한 이유는 쏙 빼버리고 오로지 반박을 위한 논거로만 사용하고 있다. 
일제보다 덜 했을 조선시대에도 [사대모화>의 영향으로 수차에 걸쳐 전국적인 수거령이 내렸는데 누가 그런 용기를 내겠는가? 
그러나 변치 않은 건 저들도 인정하다시피 이 책을 구성하고 있는 저본(底本)의 찬자(撰者)나 내용은 알려져 왔다. 
그래서 뒤에 언급한 <비교 검증할 매용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라는 강변도 왜 그런지는 여러분은 이미 짐작하고 있을 터이다. 
그야말로 알맹이를 빼고 엉뚱한 논거로 핵심을 흐린다.

[첨부화일]  조선왕조실록 수거령 관련 고서 목록

[떡밥 3]  그럼 환단고기는 언제 세상에 나타났는가? 
   
(앵무새) 1979년에 이유립에 의해서 필사본을 영인한 100부가 세상에 나왔다. 
<광오이해사>란 출판사에서 나왔으며 이를 토대로 <녹도승>과 <임승국>의 [환단고기]가 나왔으나 오류가 많았다. 
이유립은 오류를 수정한 책을 1983년에 다시 추간했는데 <배달의숙>이었다. 
그는 <광오이해사> 본을 못마땅하게 생각하여 <배달의숙>본의 간행년도를 1979년으로 고쳐 놓고 100부 발행으로 만들어 놓았다. 
그러나 <광오이해사>본이 멀쩡하게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유립의 눈속임 수작은 무위로 돌아가고 만 것이다. 
보시다시피 서로 다른 곳에서 나온 책인데 똑같은 발행년도와 발행부수를 이야기하고 있다. 
이러한 음흉한 짓거리 속에 탄생한 책이 바로 환단고기이다.

(의견) 
아주 못마땅한 듯이 글을 쓰고는 있는데 도무지 알맹이는 없고 다만 억지로 책을 폄하하기 위해
책의 내용에 대한 논거는 하나도 없이 엉뚱한 발간년도와 부수의 왜곡만을 들먹이고 있다. 
그래서 어떻단 말인가? 
글을 읽어보아도 무슨 이야기인지 <환단고기>가 잘못되었음을 반증하기 위해 무엇을 따지려고 하는지 알 수가 없다. 

 <이유립은 1979년에 광오이해사에서 필사본 100부를 영인했다. 
그런데 그가 보아도 오류가 많은 게 발견되었다
- 우리도 책을 발간하여 교정하고 또 연구를 계속하다보면 발행과정의 오류나 관점을 충분히 해석하지 못한 오류를 흔히 발견한다 -
그래서 그는 재차 1983년에 오류를 교정한 것을 배달의숙에서 발행하였다. 
그런데 이유립은 광오이해사본이 영 못마땅하여 배달의숙본을 진정한 발간본으로 인정했다>

난 이렇게 받아들여지는 건 무슨 까닭일까? 
그리고 그렇게 하는 것이 음흉한 짓거리일까? 
혹시 책을 낸 사람의 양심으로서 보다 정확히 하려는 의도는 아니었을까? 
그런 일이 음흉한 행동이라면 발행년도나 부수의 수정과 같은 형식적인 논거보다는
그런 까닭을 납득할만한 이런 자료를 밝혀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1) 진정으로 이유립의 환단고기가 잘못된 책이라고 주장하려 했다면 그가 왜? 그리고 무엇을 못마땅하게 생각하였는지? 
그 내용을 명확히 알아야 앵무새님의 강변대로 다른 분들이 보다 이성적 판단으로 잘 이해하지 않을까? 
그런데 아무리 보아도 그런 부분은 보이지 않고 마치 어린애가 투정을 부리면 시비를 붙는 듯하다.

2) 글을 읽어보면 이유립은 정말 광오이해사본을 자기의 입장과는 다르게 발간되어 속이 상한 듯하다. 
그래서 배달의숙본을 더 중요시한 듯한데 그 내용이 지금의 임승국본과 어떻게 다른지
또 말한 대로 광오이해사본이 왜 국립중앙도서관 비치본으로 인정되었는지?
- 초고본이라서 그런가? -
그것이 핵심인데 그걸 드러내어 비판해야 하는 게 더 옳지 않을까? 
왜냐하면 그 어떤 걸 채택해도 내용의 본질이 다르지 않다면
그런 이유는 현재 벌이는 환단고기 논쟁에서 그리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3)  자료로 올린 두 인쇄본을 정확히 살펴보면
<광오이해사>본이 [신시개천 5876년-서기1979년 8월 15일 인쇄, 9월 10일 발행, 100부 한정판]으로
<배달의숙>본이라고 한 것은 [신시개천 5808년 초판발행 한정판 30부, 신시개천 5876년 10월 3일 재판 발행, 한정판 100부]
으로 되어 있는 게 보인다. 

왜 배달의숙본에 그런 덧글이 더 붙었을까? 
물론 얼굴 없는 그림자들의 이론으로는 계연수의 원본이라고 강변하기 위해서라고 하겠지만...
아무리 님이 클릭해 놓은 (악질식민빠)님의 글에서 보아도 그럴듯한 명분만 내세우지 난삽하고
이것저것 입에 맞는 것만 끌어다 붙인 이야기만 있어 도저히 무슨 애기를 하는지 모르겠다

(예를 들어 대종교나 태백교나 단군교는 단군을 숭앙하고 있는데 친일단체라느니!
-그럼 일제는 단군도 인정하는 엄청난 아량으로 우리 민족종교를 보호했는지? 
아니면 그들이 벌인 문화통치의 탈 밑에서 여전히 민족정기를 살리려고 하다가 나중에 철퇴를 맞았는지
은연중에 그가 의도하지 않은 그런 흐름이 집힌다) 

말이 빗나갔는데 배달의숙본이 그런 덧글을 붙인 뜻이 오히려 이유립이 못마땅하게 생각한 의도와 교묘히 겹친다는 말이다. 
헌데 의도적으로 1979년에만 초점을 맞추도록 붉은 선으로 강조하여 놓은 듯 여겨져서이다. 

첨언으로 이런 미묘한 문제를 제기할 때는 반드시 갖추어야 할 기본자세가 있다. 
누구도 납득할 만하게 그저 본인이 원하는 부분만 잘라서 붙이지 말고 논리의 순조로운 증빙이 될 수 있도록
전체적인 흐름을 일목요연하게(1983년 발행본과 고의로-님의 말처럼-음흉한 짓거리를 한 두 원본을 비교해 놓든지 말이다) 해주고
논지를 시작하기 바란다. 
난 주장의 한 축으로 삼은 1983년 본을 여기에서 도저히 알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서부터는 다 옮겨 쓸 수 없어 핵심만 짚어나가겠다


[떡밥 4]  환단고기의 지은이가 이유립인가?     

(앵무새) 스승인 계연수에 의해 1911년 30부가 간행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나타난 각종 증거를 보면 이유립이 1960년대부터 오랜 시간 작성해 온 책임이 분명하다........
간략히 말하면 그는 갈데없는 친일파로 과거 자기 행적을 묻고 민족주의의 탈을 쓴 인물이라는 것이다.
 
(의견)
1911년이 어느 때인가? 
일제의 강압통치가 극성을 부린 때이다. 
그래서 죽음을 무릅쓰고 겨우 30부를 발행한 것이다. 
그게 얼마나 남았을까?(아마도 저들이 말하는 군정서 등 독립을 위한 민족학교 필독자료로 보내졌을지도...) 

이들은 여기에서도 명확히 이중적 잣대를 보인다. 
같은 시기에 친일 행각을 한 <이병도>를 비롯한 다른 사람들은 <상황이 그럴 수밖에 없다>는 관점을 보이다가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민족정기를 되살리고 민족사학을 이어가려고 고대사 발굴에 애쓴 분들인
<신채호나 다른 분들>에게 대하여는 단군교나 태백교 등에 몸담았던 일이 있었음을 빌미로 친일이라고 사정없이 몰아쳐 어이없게 만든다
(그대로 돌려 준다-특히 그 증거들에 대해서는 악질식민빠님의 블로그에 잘 나와있다) 

아니!  이유립이나 신채호는 그나마 우리 민족종교를 표방한 단체에나 들어갔지
-분명히 일제강압통치가 극성일 때 그나마 학문연구의 지속을 위한 안존의 기회를 살리려고-
똑같이 그런 사유로 강압통치와 문화말살의 본산인 조선총독부 산하 <조선사편수회>에 들어간 이병도에 대해서는
극구 변명을 해대는 일관성 없는 한쪽 눈만 뜬 태도로 어찌 계연수의 역작을 똑바른 눈으로 볼 수 있을 것이며
또 그 시대의 상황에서 제대로 밝혀질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말만하지 말고 이유립이 오랜 시간 작성해온 책이라는 증거는 어디에 있는지 속 시원하게 밝혔으면 한다. 
하기야 원본도 망실되고 사라진 일제시대와 그 연장선상에서 오로지 기억에 매달려 복원해내었다고 해도
그 본질은 어디에 있는지 정말 모르는가? 
그 노력이 가상하지도 않단 말인가? 
무슨 말을 지껄이는지 모르겠다.

[떡밥 5]  1911년에 만들어진 책이 왜 1979년에 세상에 알려졌는가?     
 
(앵무새) 1911년에 만들어진 책은 전혀 흔적이 없다. 
계연수는 1920년에 일본 밀정에 의해 살해당했다 한다. 
그가 환단고기를 건네주고 60갑자가 지난 후에 공개하라고 했다 한다. 
겨우 열네 살이었는데 말이다. 
이를 간직하다가 1979년에 필사영인본을 발간했다. 
사실 79년에도 전혀 모르고 있던 책이다. 
처음 언급된 것이 81년 자유지 발행인 박창암에 의해 원고를 녹도승에게 건네졌는데 그는 환단고기를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환단고기를 인용한 첫 책은 83년 김상일의 한철학이었다. 
즉 배달의숙에서 나온 100부에 의해서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한 셈이다. 
그러나 임승국의 환단고기가 1986년에 나오면서 이유립이 심혈을 기울여온 수정본은 잊혀지고 광오이해사본만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광오이해사본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추가로 말하자면 임승국은 녹도승의 환단고기 일본번역본을 적극 참고해서 자신의 한글 번역본을 내놓았다.

(의견) 
당연하지 않은가? 
일제 치하에 민족 사서를 발간한다는 게 어떤 일인지 모르고 하는 소리일까? 
더구나 겨우 30권인데....이 사람들 정말 정신이 있는가? 
조선사 편수회 소속으로 반도조선사를 만들어서
일제를 흡족하게 만드는데 앞장선 <이병도>가 일왕(日王)한테 거액의 포상금과 금시계를 받았을때

<계연수> 선생은 민족사를 복원하려 하다가 대동강변에서 순국하고
신채호 선생이 여순감옥에서 옥사한 일도 모르는가? 

도대체 어느 나라 사람들인가? 
첨언하면 <이병도>는 해방 후 민족사학자들이 떳떳하게 남아 납북되고 있을 때
한강 다리를 넘어 도망친 다음 아무도 없이 사라진 국사학계를 흔들며 우리나라 국사를 만든 사람이며
얼마 전엔 그 손자들이 서울대 총장과 국립박물관장을 휩쓰는 바람에 사회적 이슈가 되기도 하면서 인정하기 싫지만
이게 바로 오늘날 우리나라 역사학계의 수준이고 현실임을 결코 망각해서는 안된다.

또한 그런 억압과 굴욕의 치하에서 나라도 후학에게 그런 말을 할 수 있겠다. 
역설적으로 그만큼 소중한 책이니 한세상(60갑자)이 지나도록 잊혀 지지 않게 해달라는 말임을
이해조차 못할 만큼 꽉 막혀 있으니 무엇에 눈꺼풀이 씌워진 걸까? 
급박한 일경(日警)의 눈을 피하려면 겨우 열네 살이란 나이가 이들에게는 그토록 이해하기 힘든 일인가?

당연한 이야기를 비트는 솜씨가 여전하다. 
1979년까지의 상황을 전혀 모르고 하는 떼거지인가? 
나도 다 안다(혹시 지금 세대들을 겨냥한 말인지는 모르지만) 
일제 통치 종료 후 이승만 정권에서 친일세력이 온존하여 그들의 뜻대로 반도사관이 고착되고
이어 박정희의 군부통치 아래 유신체제라는 거대한 압력은 불온서적이나 그 어떤 명분을 붙이기에 따라
금서와 발언과 표현의 자유가 금지되던 시기이다. 

물론 거기에는 일제 시 사관학도로서 만주에 들어가 독립운동을 가로막은 박정희의 아킬레스건이 크게 작용되는데
이런 좋은 기회를 누가 놓쳐버릴 사람이 있겠는가? 
그래서 나도 못 보았다는 말이다. 
그걸 음지에서 끈질기게 지켜온 노력을 가상하게 여겨야지 어찌 검은 구름으로 맑은 태양을 감추려는 작난을 치는가?

그런 살벌하고 몸서리치던 철권통치가 1979년의 총성으로 끝났다는 이야기를 귀머거리라도 이해하겠다.   
왜 1979년이 중요한지 제발 깨달았으면 한다. 

또한 <80년 서울의 봄>과 <김영삼*김대중*노무현> 시대에
그동안 음지에서 숨어있던 민중서적과 금서들이 봇물 터지듯이 나타났는지 짐작이 갈 것이다. 
이제 이유립이 전두환 체제가 들어서자 찾아가서 <각하가 결심하면 우리나라 역사가 바뀔 수 있습니다>라고 말한 진정한 뜻을 알겠는가? 
이제 이런 정황들을 깨닫게 되면 왜 1981년(신군부 통치의 시작)에 자유지 발행인 박창암이 이를 잘 알고 있으며
그걸 녹도승에게 전한 까닭을 환히 알게 될 듯하다. 

그런데 저들만 전혀 모르고 있다. 
정말 모르고 있는지? 
아니면 알면서도 그런 실상을 모르는 지금 세대의 기억을 세뇌시키려는지?

아무튼 여러분들은 왜 1979년부터가 중요한지? 
그리고 <앵무새>가 착각하고 있는
<환단고기를 인용한 첫 책은 83년 김상일의 한철학이었다. 
즉 배달의숙에서 나온 100부에 의해서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한 셈이다>라는 정확한 의미와 흐름을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여기에서 교묘하게 어떤 목적으로 그전엔 그렇게 질타하던 임승국을 끌어대어 이유립을 폄하하면서
앞서 말한 광오이해사본과 배달의숙본에 대한 강변의 논리적인 귀결로 유도하고 있다. 

전형적인 이이제이 수법이 또 고질병으로 나타난다. 
임승국은 광오이해사나 배달의숙본에 대해 차별을 둔 것 같지 않다. 
될 수 있는 한 관련 사료들을 많이 끌어모아 가장 면밀하고 정려한 비교분석과정을 거쳐
그 해석을 보다 알차고 풍부하게 만들어보려고 한 흔적만 곳곳에 보이기 때문이다. 

또 누가 현재 광오이해사본만 널리 알려졌다는 판단을 하는가. 
그리고 어떤 기록에 대해서 해석이 각기 다르면 중국사서나 친일사서가 정설이고
분석결과가 같으면 그걸 베꼈다고 하는 지긋지긋한 저들의 궤변으로
또 <임승국은 녹도승의 환단고기 일본번역본을 적극 참고해서 자신의 한글 번역본을 내놓았다>라고 끝맺고 있다. 
오로지 스스로의 억측일 뿐이다. 
기록 해석의 진리는 어떤 사람이 풀어도 모두 같게 나오는 것이 아닌가?

[떡밥 5]  그럼 이유립이 필사한 원본은 있을 것 아닌가?   
 
(앵무새) 그 원본은 분실했다고 한다. 
49년에 오형기라는 사람에게 1911년 간행 원본을 필사시켰는데 그 과정에서 분실했다 한다. 
그런데 한배달 잡지 2001년 7월호에 중요한 기록이 있다. 
[1부가 전해져 이유립선생에게 70년대 초반까지 있었는데 의정부에서 살던 셋방살이가 너무 어려워 군산으로 가서 잠깐 있었다. 
그 사이 주인은 방세도 안낸 노인이 사라지자 책을 내다 팔 때 그것도 없어지고 말았다] 
보관해온 게 모두 없어졌다는 말이다. 

그런데 지금 환단고기는 어떻게 발간된 것일까? 
역시 7월호를 보자 
[급기야 기억을 되살려 다시 써야 했다. 
워낙 공부를 많이 하고 어려서 전령으로 활동할 때 문건보다는 외워서 전달했던 것이나 속독으로 훈련된 탓에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 후 잘못된 부분이 몇군데 제자들에게 발견되었으나 거의 맞을거다 라고 말하는 선생님의 인품을 의심하는 사람
(식민사학자를 제외하고는)은 아무도 없었다. 
이글에서와 같이 결국 창작했다는 말이다. 
그리고 이를 의심하는 사람은 [식민사학자]가 된다니 명심들 하기 바란다.

더 흥미로운 사실이 최근 신동아(2007. 9)에 의해 밝혀졌다. 
전형배씨의 기억으로
<선생은 오형기씨가 쓴 발문을 아주 못 마땅히 여겼다. 
발문은 그 책을 쓴 사람이 붙이는 것이지 필사를 한 사람이 붙이는 것이 아니다. 라고 여러 차례 말했다. 
또 오씨가 필사한 환단고기에는 오자가 있다며 환단고기를 가르쳐줄 때마다 틀린 글자가 있다고 수정해주었다   

자! 
앞의 한배달의 기록에서는 잃어버렸다고 했는데 발문의 기록은 누가 기억을 되살려 써 놓은 것이 되겠는가? 
발문이 마음에 들어서 기억을 더듬어 적어 놓았다면 몰라도 못마땅해 했다면서
그것을 기억을 더듬어 되살려 놓았다는 것이 말이나 되는 일이겠는지
더구나 환단고기를 볼 때마다 틀린 글자를 수정해 주었다는 것은 무슨 이야기일까? 
이미 책은 잊어버리지 않았다고 하지 않았는가? 

전형배가 이유립을 만난 것은 1970년대 중반 이후다. 
따라서 이유립이 환단고기를 기억을 되살려 써 놓은 다음에 만난 것이다. 
이렇게 앞뒤가 안맞을 수가 있는가? 
이 책이 엉터리 책이라는 증거로 이보다 확실한 일이 있겠는가?   

(의견) 
글의 흐름을 보니 분실 여부는 인정해야 뒤에 주장하려고 하는 창작운운이 성립될 것이니 그렇게 보아주겠다. 
그런데 기억을 되살려 필사를 하는데 왜 그게 창작품이 되는지 도저히 납득이 안간다. 
자기가 의도한대로 귀납시키려는 태도가 역력하다. 
내 경험으로도 취직이나 수험시 귀중한 책은 달달 외워야만 훌륭한 성적을 낼 수 있다. 
더구나 그는 참 어려운 시기에 생명보다 더한 민족 사서를 잘 보관하라는 말씀을 받든 분이다. 
그리고 가장 감수성이 예민한 열네 살부터이다. 

내 이야기로 돌아가자! 
헌데 나도 기억을 되살리려고 필사해둔 게 있었고 잊어버린 적도 종종 있다. 
그럼 그 기분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당한 사람은 더욱 잘 알 것이다. 
무서울 정도의 집중과 순발력으로 다시 복원하는데 조그만 것들은 틀릴지 몰라도 핵심부분이나
중요하거나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들은 정확히 복사해낸다.   

나중에 다시 찾았을 경우에 대조해 본 경험이다. 
그건 창작이라기보다는 모사(模寫)에 더 가깝다.   
여기 글에서는 아마 원하는 결론이 창작이고 싶은 듯 하다.   
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는 걸 명심하라! 
그걸 모른다면 그는 학습이라는 걸 안 해본 사람이거나 어려서부터 그런 노력도 안 해 본 이 들일 것이다. 

아직도 잘 이해가 안 되면 우선 쉬운 것부터 옛 선현들의 공부 방식을 생각해 보라! 
천자문부터 엄청난 분량의 서적을 외워낸다. 
또 난 종교를 믿는데 사도신경부터 웬만한 기도문이나 구절들은 다 외우고 있다. 
그리고 승려가 외우는 심경들이나 경전을 모르는가? 
더욱이 이유립은 스스로 언급했다시피 가장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환경 속에서 있었다.

1) 감수성이 예민한 어린 시절에 그로보아서는 무거운 사명을 부여받았을 심정과 책임감으로 인한 긴 세월동안의 축적된 암기내용들
2) 워낙 공부를 많이 했다고 스스로도 말할만큼 학구열이 충만했으며 알다시피 환단고기 내용은
불경과도 같은 경전도 있고 또 편년체의 기록들은 내가 공부한 수험서나 전문서적과도 형태가 단순하다.
3) 특히 일제 시 마치 전쟁 상황과도 같은 분위기하에서 전령으로 어려서부터 활동했으며
새어나가지 않으려고 고육지책으로 문건보다는 외워서 전달했던 것이나 속독으로 훈련된 능력
- 이런 일에 발탁되는 사람들의 능력이나 특성 - 은 나보다 더 잘 짐작할 듯하다.

그런 의미에서 정말로 이를 모른 채 무턱대고 이를 의심하거나 창작으로 몰아세우는 사람은 [식민사학자]가 된다니
명심들 하기 바란다는 말은 기가막힌 자아비판이다. 
그래서 그가 다른 목적으로 이어서 쓴 다음 구절이 나에게는 새삼 그런 까닭으로 정확하게 언급한 사실로 더욱 다가온다.

[더 흥미로운 사실이 최근 신동아(2007. 9)에 의해 밝혀졌다. 
전형배씨의 기억으로 선생은 오형기씨가 쓴 발문을 아주 못 마땅히 여겼다. 
발문은 그 책을 쓴 사람이 붙이는 것이지 필사를 한 사람이 붙이는 것이 아니다. 라고 여러 차례 말했다. 
또 오씨가 필사한 환단고기에는 오자가 있다며 환단고기를 가르쳐줄 때마다 틀린 글자가 있다고 수정해주었다]

헌데 이다음 글부터 갑자기 논조가 꼬이는 걸 볼 수 있다. 
그야말로 뒤죽박죽이다. 
아마도 오로지 이유립을 죽이기 위해 이것 저것 잘라서 붙이다 보니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혼란이 와서
뭐가 뭔지 종잡을 수 없는 가운데 흐트러진 모양이다. 
그래서 내가 정리를 해주겠다.   

앞의 <한배달> 잡지 기록에서는 잃어버렸다고 했다. 
그런데 49년 필사를 맡긴  오형기가 쓴 발문의 기록을 보고 그렇게 말한 것이다.   
그렇다면 누가 기억을 되살려 써 놓았다는 말이 아니다   
물론 원본을 익히 본 이유립은 발문이야 머릿속에 각인되었기 때문에
계연수의 발문이(있었나 없었나)이 아니었는지 모르지만 그런 발문이 마음에 안 들어서 못마땅했기에
앞선 [떡밥 3]에서 처럼 광오이해사본과 배달의숙본과 충돌이 일어난 것이다.   
이제 스스로 발설한 것 처럼 두 출판사의 갈등원인이 여기에서 본의 아니게 저절로 밝혀진다. 

또한 더구나 환단고기를 볼 때마다 틀린 글자를 수정해 주었다는 것은 무슨 이야기일인지 모르는 게 아니라
오씨가 필사한 환단고기를 볼 때마다 오류가 많다고 친절히 설명해주면서 각인된
계연수님이 편찬한 환단고기의 기억을 더듬어 일일이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미 책은 잃어버리지 않았다고 하지 않았는가?>  라는 의문은 가질 필요조차 없다. 
아울러 전형배가 이유립을 만난 것은 1970년대 중반 이후라고 하였으니
따라서 이유립이 환단고기를 기억을 되살려 써 놓은 다음에 만난 것이다. 
스스로 만들어낸 거짓의 함정에 빠져 <이렇게 앞뒤가 안 맞을 수가 있는가?>하고 고민할 필요가 없다.   
조금만 정도로 눈을 돌리면 다 자연스럽게 이어지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차츰 [빨간불]이 되어가는 그가 쓴 글귀를 그대로 활용하여 돌려주겠다. 
이 책이 엉터리 책이 아니라는 증거로 이보다 확실한 일이 있겠는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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