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준희(2006-10-11 16:50:31, Hit : 6686, Vote : 103
 (요청자료) 한반도는 고인돌의 천국, 프랑스는 1기에 불과

아래 역사스페셜 자료를 보시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글중에 보면 프랑스에는 고인돌이 1기 있다
한반도는 3만 5천기...전세계 고인돌의 40% 존재
프랑스는 겨우 1기, 저것도 자랑스럽다 하는데 그럼 우리는....

비교대상이 되는가 ?
프랑스 학자들이 한반도에 와 고인돌을 보고 놀라 뒤로 자빠진다고 한다
우리는 앞마당에 고추말리는데 사용하는 등 한반도 전역에 널려 있다

보호라는 개념보다는 생활속에 같이 묻혀있는 것이다
일만년 천손민족의 역사... 그것 아닐까 ?

단군이 신화라 주장하는 학자들의 머리에서 나오니 3천년전 운운 하겠지
한인 - 한웅시대를 이해하면 연대추정이 달라지지 않을까 ?


# 프랑스 까르냑 지역

현재 세계적으로 고인돌과 선돌로 가장 많이 알려진 곳은 프랑스 까르냑이다.
파리에서 서쪽으로 500키로 떨어져있는 곳에 위치한 까르냑지방엔 수많은 선돌들이 열을 지어
서있다.

두 사람 걸을 때 이러한 선돌을 보기위해 이 마을엔 1년내내 세계 각국에서 관광객들이 찾아온다.
관광객들 공원을 조성해서 보기좋게 관리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은 보존에도 특별히 신경을 쓴다.
고인돌이 늘어서있는 잔디엔 담장을 쳐서 사람의 접근을 막고 있다.

하지만 이곳의 선돌은 규모만 클뿐 그 모양이 단조롭다.
더욱이 고인돌은 단 한기뿐이다.
그 수나 모양에 있어서 우리의 고인돌에는 훨씬 못미치는 수준인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옛선조들의 발자취인 거석문화를 소중한 문화유산으로 가꾸고 있다.


------------------------------------------------------------


< 한반도, 고인돌왕국의 수수께끼 >  

- 방송일: 19981205
- 역사스페셜(제7회) 98년 12월 5일(토) 방송
- 동영상 보기 - http://www.kbs.co.kr/history/vod.shtml

[한반도,고인돌 왕국의 수수께끼]

━━━━━━━━━━━━━━━━━━━━━━━━━━━━━━━━━━━━━━━━━━
MAIN TITLE
━━━━━━━━━━━━━━━━━━━━━━━━━━━━━━━━━━━━━━━━━━

<프롤로그> - 곳곳에 산재해있는 고인돌군

- 헬기샷으로 마을 모습 12"
고인돌이 보이면 이 땅에 사람들이 살기시작하면서부터
그들은 여러 가지 흔적을 남겼다.
그 중 역사가 기록되기 이전 이 땅에
- 고창의 운곡리 고인돌 살던 사람들이 남긴 흔적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고인돌이다.
- 고창의 운곡리 고인돌 9" 그런데 이러한 고인돌이 이 땅엔 유난히도 많다.
- 강화도 부근리 고인돌 10"
- 화순 대곡리 밭사이의 7"
고인돌
- 고창지역의 고인돌 15" 특히 전북 고창의 매산마을엔
산기슭을 따라 수백기의 고인돌이 밀집되어 있다.
이 땅엔 왜 이렇게 많은 고인돌이 있는걸까?
━━━━━━━━━━━━━━━━━━━━━━━━━━━━━━━━━━━━━━━━━━
- 위의 c.g.화면에 타이틀 뜬다.
한반도,고인돌왕국의 수수께끼(편집구성안 2)
━━━━━━━━━━━━━━━━━━━━━━━━━━━━━━━━━━━━━━━━━━
스튜디오 1(현대의 고인돌 무덤군)


- 타이틀 사라지면 고인돌무덤군 속에서 걸어나오는 유인촌)
제가 지금 서 있는 곳은 고창의 매산마을입니다. 매산마을의 고인돌군을 컴퓨터그래픽
으로 그대로 재현해놓은 것인데,제 주변에만도 (손으로 세며)하나,둘,셋..뭐 10(?)여기는
훨씬 넘는 고인돌이 모여 있습니다.이렇게 이 마을의 산기슭에 있는 고인돌을 모두
세어보면 무려 442기(강조)나 된다고 합니다. 어떻게 이렇게 많은 고인돌이 한마을에
모여있는지 의아하기도 하고 놀랍기도 한데 그런데 더욱 놀라운 건 우리나라 곳곳에서
이렇게 수십,수백기의 고인돌이 모여있는 걸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오른쪽에 손으로 슬라이드 내리듯이 뭔가를 내리면 한반도 지도 나온다.)
지금 이 지도는 한반도의 고인돌 분포돈데 (손으로 가리키며) 이렇게 주로 서해안
일대에 많이 분포되어 있습니다. 지역별로 보면 고창을 포함한 전라도 지역에
20.000여기의 고인돌이 있고 북한의 평양지역에 10.000여기가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강원도 충청도 경기도일대에서도 수십기씩 모여있는 고인돌을 어렵지않게 볼
수 있습니다..이렇게해서 우리나라 고인돌의 총수는 어림잡아 35.000여기에 이릅니다.
대단한 양이지요...이는 전세계에 있는 고인돌 수의 40%에(강조) 해당하는 어마어마한
양이기도 합니다.

- 옆의 고인돌 가리키며)
고인돌은 (옆의 고인돌의 덮개부분 가리키며)이 큰돌을 (받침돌 가리키며)이 작은 돌로
고이고 있다고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지금으로부터 3000여년전에 쓰이던 무덤양식입
니다. 지금으로부터 3000년전이라..그때 한반도는 최초의 국가인 고조선시댑니다.
그렇다면 이 시대의 무덤이 왜 이땅 한반도에 유난히 많이 남아있는 것일까요?
오늘 역사스페셜에서는 그 의문을 추적해보려합니다. 우선 가장 많은 고인돌이
밀집되어있는 고창의 매산마을로 가보겠습니다.
━━━━━━━━━━━━━━━━━━━━━━━━━━━━━━━━━━━━━━━━━━
VCR 1 ..고인돌은 족장만의 무덤은 아니었다.

# 지상에서 살펴본 고인돌(매산마을)..

- 마을의 고인돌 차로 트래킹 11"
매산마을의 산기슭에 늘어서있는 수많은 돌들-
이들이 모두 고인돌이다.
고인돌행렬은 산경사면을 따라 1..5키로구간
이어져 있다.

- 다양한 고이돌들 28" 그런데 이곳의 고인돌들을 둘러보면
한가지 재미있는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이 수 많은 고인돌 중 어느 것 하나 똑같은
모양새가 없다는 것이다.
위에 올린 돌덩어리나 아래 받친 받침돌의 모양에
- 보조지석이 있는 고인돌까지 따라 이들은 아주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 음악 -

- 길가 4" 또한 고인돌은 길가에 일렬로 줄을 맞춰 늘어서
있기도 하고

- 담장 6" 어느 집 담장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기도하다

- 장독대 20" 그런가하면 아예 집안에 들어서있는 고인돌도 있다.
이 고인돌은 어느 집의 장독대 한켠을 차지하고
있다. 모양이 아름다워 눈길을 끄는 고인돌이다.

- 산속의 고인돌 14" 숲속으로 들어가면 더 많은 고인돌을 만날 수 있다.
불과 10미터 간격으로 고인돌들이 늘어서있다.

-------------------------------------
* 전영래교수 인터뷰
"이 산기슭에 남사면에 가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조밀한 분포를 보이고 있다.동서 1.5키로 범위에
서 확인된 게 442기-미확인된 것까지 합하면
500기가 넘습니다. 이것만이 아니라 동쪽으로
산밑에 계속 있기 때문에 매산마을 기점으로 해서
총체적으로 얘기하면 1000기 넘을 것으로 생각됩
니다.
--------------------------------------
- 산으로 걸어가는 두사람 45" 우리는 흔히 고인돌은 권력을 가진 자,즉 족장의
무덤으로 알고있다.그렇다면 여기서 한가지 의문이
생긴다. 이 지역에 있는 수백기의 고인돌이 모두
족장의 무덤인가하는 점이다.
- 고인돌 위의 PD 우리는 고창 운곡리에 있다는 우리나라 최대의
고인돌을 찾아봤다.
- 자로 재기 규모가 큰 고인돌은 족장의 무덤인지
확인해보기 위해서였다.
실제 고인돌의 규모는 어마어마했다.
높이만 무려 4미터 가까이 됐다.
그런데 의외로 이 근처에서 발굴된 대형고인돌에서는
권력을 상징할만한 흔적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는 것이다.
------------------------------------
* 전영래교수 인터뷰
"무덤방이 작고...유골 없다."
-------------------------------------

- 풀샷 23" 그렇다면 매산마을 산기슭에 자리하고있는
수백기의 작은 고인돌들은 어떤가?
전영래교수는 지난 92년 이 매산마을의 고인돌을
발굴조사했다.그런데 이곳에서도 역시 유골은 물론
권력을 상징할만한 부장품이 전혀 발굴되지
않았다.

-제천 황석리 16" 고인돌에 묻힌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보기위해
유골이 발굴된 고인돌을 찾아보기로했다.
지금은 충주호로 수몰된 지역인 충북 제천
황석리에선 두 번에 걸쳐 유골이 발굴되었다.
분석해본 결과 30대 남자였다.


- 대구지역으로 차 트래킹 그런데 대구 지역에서는 고인돌의 주인공이 남자만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주는 고인돌이 발굴되
었다
-현장음-
지금은 그 흔적이 남아있지않지만 이곳에 있던
한기의 고인돌에서 유골이 발견되었다.
-----------------------------------------
* 양선생 인터뷰
머리부분으로 추정되는 곳에서----
20세 전후의 여인
---------------------------------------
-c.g. 12" 발굴당시 무덤방은 두 개였다.그런데 한쪽에는 20대
여자의 유골이 발견되었고 그 옆의 무덤방에선
어린아이의 유골이 발견되었다.즉 고인돌엔 여성이나
어린아이도 묻혔던 것이다.

-충북대 외경 28" 또 충북대에서 발굴한 충북 옥천의 고인돌에서도
여성의 무덤임을 짐작케하는 고인돌이 발견되었다
이 고인돌에서는 유골은 발견되지않았다.
그러나 덮개돌을 들어본 결과 바닥에선 수많은
돌들이 발견되었는데 그 중에 고고학자들의 시선을
끄는 돌이 있었다.
---------------------------------------
* 이융조교수 인터뷰
"보시다시피 선을 여러차례 새김을 양쪽에서
이 얼굴은 죽은 사람의 여인"
--------------------------------------

-여성상징 선돌 11" 고인돌옆에 세워진 선돌 또한 무덤의 주인공이
여성이었음을 상징하는 모양이라고 한다.
임신한 여성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고인돌떼샷 이렇듯 고인돌엔 남성과 여성,그리고 어린아이도
묻힐 수 있었다.
------------------------------------
* 김병모교수 인터뷰
"남녀노유 누구나 묻힐 수 있었다"
----------------------------------
━━━━━━━━━━━━━━━━━━━━━━━━━━━━━━━━━━━━━━━━━━━━스튜디오 2(고인돌무덤군 걸어다니며)

- 스튜디오 1의 매산마을 떼샷)
고인돌은 권력을 가진 자든 그렇지않은 자든 누구나 묻힐 수 있었던 일반적인 무덤
양식이었습니다. 매산마을에 떼로 고인돌이 모여있는 것도 이런 이유때문입니다.
그런데 매산마을의 고인돌을 보면 그 수만 많은 것이 아니라 모양도 가지각색입니다.

- 고인돌 무덤군으로 걸어들어가는 유인촌..- 북방식 고인돌 옆에 서서)
제 옆에 있는 이 고인돌은 가장 많이 알려진 형태의 고인돌입니다.위에 거대한 판석이
올려져 있고 아래에는 긴 판석으로 네면을 막아놓았습니다. 이러한 모양의 고인돌은
주로 한강 이북에 많이 나타난다고해서 북방식고인돌이라 부르는데 덮개돌 아랫부분,
- 고인돌 아래 사각방의 한 문이 떨어지면 안에 시신 안치되어있다.)
그러니까 이 지상에 시신이 안치되어 있습니다.

- 다시 옆으로 이동하는 유인촌..남방식 고인돌 옆으로 간다.)
그런가하면 매산마을에서 많이 나타나는 형태로 위에 괴석을 올리고 아래에 작은
돌들을 받친 형탭니다. 이는 한강이남에 많다고 해서 남방식이라고 하는데
- 남방식 고인돌의 덮개돌 떨어져내리고 카메라 부감으로 내려다보면 시신 보인다.)
시신은 이렇게 지하에 묻혀있습니다.

- 이번엔 그 옆의 개석식 고인돌..고인돌 뚜껑 떨어져나가고 부감으로 비추면 지하에 시신)
그리고 언뜻 보기에 자연석과 같은 이 고인돌은 개석식이라고 하는데 이 고인돌도
시신은 지하에 묻혀있습니다.

- 고인돌 떼샷사이를 걸으며)
이렇게 고인돌은 그 모양에 따라 시신을 묻는 방식이 아주 달랐습니다.
그만큼 3000년전 이 땅엔 다양한 매장풍습과 문화가 존재했다는 얘기가 될텐데요..
그렇다면 이 땅에 살던 사람들은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우리는 국내에서는 유일하게
완전한 형태로 발굴되었다는 제천 황석리의 유골을 가지고 3000년전 이 땅에
살던 사람들의 얼굴생김새를 복원해봤습니다
━━━━━━━━━━━━━━━━━━━━━━━━━━━━━━━━━━━━━━━━━━━━━
VCR 2 .. 영상복원,3000년 전 이땅에 살던 사람은?

# 서울대학교

- 서울대학교로 들어가는 PD 6" 제천 황석리에서 발굴된 유골은 현재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에서 보관중이다.

- 두개골들 15" 이것이 고인돌에서는 유일하게 완전한 형태로
발견된 유골이다.
각 부분이 비교적 잘 보관되어 있다.




-------------------------------------
* 장신요박사 인터뷰
"한국사람치고는 좀 크고 특히 두개골이
한국사람은 단둔대 이거는 장두예요..
그러니까 짱구머리란 말이예요
-------------------------------------

# 조용진교수 연구실

- 팬하면 조용진교수 14" 우리는 서울 교대 조용진교수의 도움을 받아
얼굴을 복원해보기로 했다.
- 팬하면 조용진교수 조용진교수는 여러차례 두개골을 이용해
얼굴을 복원해냈다.

-----------------------------------
* 조용진교수 인터뷰
"눈구멍이라든지 크기라든지 눈의 구멍의
각도라든지---이런 걸 보면 대체로 얼굴이
어떤 얼굴이었는지 그려낼 수 있다.
---------------------------------

- 자료 18" 그런데 황석리인의 유골엔 턱뼈가 남아있지
않았다. 다행히 발굴당시의 사진이 남아있어
턱뼈의 상태를 사진으로나마 볼 수 있었다.

# 영남대

- 턱뼈 찾는 모습 24" 그리고 얼굴복원작업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인
턱뼈를 찾기위해 영남대 박물관을 찾았다.
박물관 지하엔 오육세기경의 고분에서 발굴된
유골이 많이 보관되어 있다.
이곳에서 제천황석리의 두개골과 비슷한 형태의
두개골을 찾아야한다
유골을 하나하나 살피던 조용진교수는
제천황석리 것과 비슷한 두개골을 찾아냈다.

----------------------------------
* 조용진교수 인터뷰
이쪽 이마 나왔지..이 쪽 이마 나오면 이쪽으로
씹는다. 황석리도 이쪽 이마 씹는다.
----------------------------------

-두개골의 등고선 촬영 10" 좀 더 정확히 살펴보기위해 두개골의 등고선
촬영을 했다.왼쪽 이마의 튀어나온 정도가
황석리 것과 유사했다.
- 턱뼈 치수 재기 8" 조용진교수는 찾아낸 유골의 턱뼈를 정확히 쟀다.
황석리 유골의 턱뼈는 이와 유사할 것이라고 추정
하기 때문이다

# 유골 복제과정(테이프 11)

- 유골을 가지고 알피코리아로7" 얼굴을 복원하기위해선 우선 두개골의 본을
떠야한다.
- 내부 12" 이곳은 컴퓨터를 이용해 복잡한 기계부품도
한치의 오차도 없이 똑같이 만들어내는 곳이다.
-----------------------------------
* 사장 인터뷰
"레이져스캐너 이용해 표면 스캐닝-
스캐닝하면 데이터값이 수십만 포인트 나온다.
----------------------------------
- 설명 모습 10" 첫단계는 두개골의 치수를 재는 것이다.
레이져를 이용하면 직접 두개골에 손이나 기계를
대지않고도 두개골의 치수를 정확히 잴 수 있다.

- 컴퓨터로 15" 이렇게 측정된 두개골의 치수는 컴퓨터로 바로 입력
된다.
그리고 컴퓨터내에서 다시 3차원으로 두개골을
설계해낸다.

- 컴퓨터앞에 사람
이고. 15" 이 설계를 바탕으로 이제 실물과 똑같은 두개골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플라스틱 두개골나오다 18" 드디어 플라스틱재질의 두개골이 완성되어 나왔다.
작업을 시작한지 열흘만이었다.

-잠시 포우즈-

- 복제한것과 원본 실물과 똑같은 두개골과 광대뼈가 완성되었다.
이제 얼굴을 복원하는 일만 남았다.




# 조용진교수 작업

- 작업 모습 13" 얼굴을 만들기위한 첫작업은 진흙위에
두개골 본을 입히는 것이었다.

- 완성된 뼈대 석고 10" 그렇게 만들어진 머리를 석고로 뜨면
석고상 등고선 촬영 완전한 두개골이 복원되는 것이다.
얼굴윤곽은 완성된 셈이다.
-사이음악-

- 뼈대에 근육붙이기 9" 이제 두개골에 근육과 피부를 붙여야한다.
이때는 뼈의 발달된 정도에 따라 근육의 두께가
결정된다.
-사이 음악-

- 얼굴 조각 이제 눈,코,입만 다듬으면 얼굴이 완성된다.

-사이 음악-

-얼굴 완성 12" 이렇게해서 수천년전 이땅에 살던 사람의 얼굴이
복원되었다.그런데 어쩐지 낯설다.
----------------------------------
*조용진교수 인터뷰
이마 튀어나오고..코 높다..이런 형은 아무래도
우리나라에는 드문 형이다.
----------------------------------

- 얼굴 돌리기 12" 기원전 410년 제천 황석리에 살았던 사람은
바로 이런 생김새의 사람이었다.
━━━━━━━━━━━━━━━━━━━━━━━━━━━━━━━━━━━━━━━━━스튜디오 3 (기본세트)

- 밑에서 탁자가 나오고 그 위에 만들어진 얼굴 올려져있다..얼굴 )
지금 이게 제천 황석리의 유골을 가지고 얼굴을 복원한 것입니다.
- 얼굴 가까이 들어보이며)
어떻습니까..저랑 비교를 해보면 저보다 코가 상당히 오똑합니다...
마치 서양인의 코같기도 하죠..그리고 턱도 분명하게 각이 져있고 머리는 짱구형입니다
생각보다는 이목구비가 뚜렷한 게 아주 잘 생긴 얼굴이죠...그런데 지금의 우리 모습과
비교하면 어딘가 낯선 모습입니다...물론 이 복원된 얼굴 하나만 가지고서 3000년전
이땅에 살던 사람들의 생김새가 모두 이렇다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어쩌면
이 땅엔 (얼굴 보며) 지금과는 아주 다른 생김새의 사람들이 살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 유골을 탁자위에 놓으면 다시 바닥으로 사라진다...분위기 전환 느낌
이렇듯 고인돌에 얽힌 여러 가지 의문을 풀어봄으로써 우리는 3000년전 이 땅의
모습을 그려볼 수 있습니다.

- 효과음과 함께 발 아래 거울이 생기고 매산마을의 고인돌군이 부감으로 보인다.)
지금 제 발아래로 내려다보이는 것이 매산마을의 고인돌군입니다.
그런데 이 고인돌군을 내려다보면 한가지 이상한 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바로 모든 고인돌들이 일제히(강조) 어느 한 방향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 발아래의 고인돌군으로 카메라 움직인다..부감샷)
━━━━━━━━━━━━━━━━━━━━━━━━━━━━━━━━━━━━━━━━━━
VCR 3 ..왜 매산마을에 자리잡은걸까?

# 매산마을 헬기샷

- 고인돌 따라가다. 21" 고창 매산마을의 고인돌들은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 것일까? 그 방향을 따라가 봤다.
-잠시 포우즈-
그곳엔 넓은 평야가 펼쳐져있었고 그리고
하천이 흐르고 있었다.
-----------------------------------
*김정빈교수 인터뷰
"현재 아래바닥은 자갈이고..
수천년 쌓인 것"
----------------------------------
- 하천현장음 죽이고 45" 그러니까 고인돌이 축조될 당시에도 이 하천은
흐르고 있었던 것이다.
- 발굴현장으로 그렇다면 고인돌과 하천은 어떤 관련이 있는것일까
우리는 다른 지역의 고인돌들도 살펴보기로 했다.
이곳은 전북 진안-
용담댐 건설과 함께 수몰될 지역으로
수몰되기 전 고인돌발굴작업이 한창 진행중이었다
모두 20여기의 고인돌이 내부를 드러내고 있었다.
그런데 이곳에서도 모든 고인돌은 일정한
방향으로 세워져있었다.그리고 그것은 고인돌옆으로
흐르고있는 하천의 물 흐르는 방향과 일치하고
있었다..

- 제천 황석리 22" 이같은 사실은 제천 황석리에서도 확인된다.
이곳에서는 40기의 고인돌이 발굴되었다.
그런데 이곳에서도 역시 고인돌옆으로 하천이 흐르
고 있었고 고인돌의 방향은 하천의 물 흐르는
방향과 나란하게 세워져있었다.

----------------------------------------
* 이융조교수 인터뷰
"40기가 물과 나란히..분명히 불과 연관성 있다."
-------------------------------------

# 국립중앙박물관

- 박물관 팬 11" 고인돌과 물과는 어떤 관련이 있는지,//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는 고인돌부장품을 통해
그 의문을 풀어 볼 수 있다.
- 마제석검 5" 고인돌에서 가장 흔하게 발견되는 부장품은
마제석검과 돌화살촉-
- 반달돌칼 13" 그런데 이곳에 전시된 부장품중에 눈길을 끄는
것이 있었다.
바로 반달돌칼이다.
이는 이삭을 딸 때 쓰던 도구로 벼농사와 보리농사를
했다는 것을 짐작케한다.
-유구석부 16" 반달돌칼과 함께 전시되어있는 이것은
땅을 팔 때 쓰는 농경도구였다.
이렇듯 고인돌부장품은 당시 고인돌을 축조하던 사람
들이 농경생활을 했다는 것을 짐작케해준다.
이러한 사실은 고인돌과 같은 시대에 쓰이던
또다른 유물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 농경문 청동기 11" 당시 농경생활을 그려놓은 농경문청동기에는
한 남자가 밭을 가는 모습이 새겨져있다.
밭농사가 이뤄지고 있었던 것이다.

- 부여송국리의 토기에 14" 그리고 부여 송국리의 주거지터에서는 벼농사를
했다는 여러 흔적이 나왔는데
볍씨문양이 새겨진 토기와 함께
- 탄볍씨 4" 탄화된 볍씨가 나오기도 했다.
------------------------------------
* 김병모교수 인터뷰
우리나라 고인돌 서해안일대에서 발견-
이는 따뜻한 지역에서 농경생활
-----------------------------------
-매산마을 헬시샷 9" 즉 고인돌사회는 농경생활을 통해
제법 큰 경제력을 갖춘 사회였던 것이다.
이들이 물을 중요하게 여긴 건 이 때문이다
━━━━━━━━━━━━━━━━━━━━━━━━━━━━━━━━━━━━━━━━━

스튜디오 4(기본세트)

-기본세트에 서서)
그러니까 3000년전 고창의 매산마을은 상당한 경제력을 갖춘 큰 규모의
사회였던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의 매산마을의 모습을 근거로 해서 3000년전
마을의 모습을 상상해봤습니다.

- 세트에 문(첨단 느낌의 문?)이 생기고 그 문이 열리고 내부를 보는 유인촌
유인촌 시선에 따라 내부 모습들 하나하나 보여준다.)
아마 3000년전 매산마을의 모습은 이러한 모습이지않았을까요? 이렇게 산의 한쪽
경사면에는 마을의 공동묘지인 고인돌무덤군이 자리하고 있고 그 아래로 드넓은
논밭이 펼쳐져있으며 그 옆으로는 사람들의 거주공간인 움막이 여러채 즐비해있습니다
그리고 마을 앞을 큰 하천이 흘러서 지나갑니다.

- 문 앞에 서있는 유인촌)
이렇듯 주거형태만 다를 뿐 3000년전 매산마을은 농사를 생업으로 하고 있는 지금의
매산마을과 그 모습이 크게 다르지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이곳 매산마을의 고인돌무덤군에서 우리의 시선을 끄는 것이 있습니다.
덮개돌의 무게만 수백톤에 이르는 거대한 고인돌입니다.

-고인돌 등장)
지금 제 옆에 있는 것이 매산마을에 있는 거대고인돌인데,(옆에 서본다.)높이도
저보다 훨씬 크고 (팔을 벌려본다.)가로폭도 상당히 넓습니다.
과연 기중기도 없던 시절, 이러한 거대한 고인돌을 어떻게 만들었을까요?
우리는 우선 고인돌에 사용된 (고인돌을 가리키며) 이 거대한 덮개돌과 받침돌은
어디에서 어떻게 구해온 것인지부터 추적해봤습니다.
━━━━━━━━━━━━━━━━━━━━━━━━━━━━━━━━━━━━━━━━━VCR 4 ... 고인돌 축조과정 복원/돌은 어디서 구했을까?

# 매산마을의 대형고인돌(김병모교수..돌 절단 흔적 찾다..테이프 17)


- 화순으로 가는 차 트래킹 7" 얼마전 전남화순에선 고인돌채석장이 발견되었다.
- 화순 고인돌군 8" 100여기의 고인돌이 모여있는 고인돌무덤군 가까운
곳에 채석장이 자리하고 있었다.

---------------------------------
* 이영문교수 인터뷰
--여기는 계곡의 형성된 고인돌군
산기슭 이용한 채석장과 고인돌을 200미터
안에서 다 보여준다.--
----------------------------------

- 채석장 23" 고인돌채석장에는 여기저기 큰돌들이 쌓여있었다.
고인돌을 만들기위해 잘라낸 돌인듯했다.

그리고 돌을 잘라낸 흔적도 어렵지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
*이영문교수 인터뷰
요것이 지금 채석을 하기위해서 구멍을 팠던
홈을 팠던 흔적입니다.이게 앞으로 떨어져나가고
흔적 남아있지요
----------------------------------
- 채석흔적 6" 이 채석장을 통해 고인돌은 가까운 곳에서
잘라온 돌을 가지고 만들었음을 알 수 있다.

# 매산마을

- 매산마을 고인돌의 잘린 12" 고창 매산마을의 고인돌은 어디에서 잘라온
흔적1 것일까?
우선 고인돌에서 잘린 흔적이 있는지를 찾아봤다.

----------------------------------
*이영문교수 인터뷰
"채석은 이 범위고 비스듬히 되었다.
원래 암질로 봐서는 수직인데 파들어가서
경사지다."
---------------------------------

- 매산마을 고인돌 3" 매산마을 고인돌에서도 분명이 자른 흔적을
찾을 수 있었다.
- 산으로 줌인 10"
전문가와 함께 매산마을 뒤에 있는 산으로
올라가보기로 했다.
화순채석장처럼 가까운 곳에서 돌을 가져왔을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언뜻 보기에 고인돌을 만들었을법한
암반은 눈에 띄지않았다.
- 산 올라간다.
그런데 흙을 조금 긁어내자 거대한 암반층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 현장에 땅 파는 소리 -
- 돌 타이트 그렇다면 매산마을의 고인돌은 이 암반에서
잘라낸 것일까?
우리는 이 산의 암반과 매산마을고인돌의 돌성분은
같은 것인지 분석해보기로 했다.
# 김정일 박사
18" 고인돌과 산에서 떼어낸 돌을 잘게 부순 뒤
석질이 같은 것인지 봤다.
------------------------------------
* 김정빈 인터뷰
이 암석은 석영등 화산암에서 보이는
광물의 조합 가지다.
--------------------------------
- 채석장 현미경 7" 현미경으로 본 산에서 잘라온 돌의 석질도
고인돌과 같은 것이었다.
-----------------------------
* 김정빈인터뷰
고인돌과 채석장 완전히 일치한다.
--------------------------
23" 그렇다면 특별한 장비도 없던 3000년전의
사람들은 거대한 암석을 어떻게 잘라냈을까?
우리는 현대식 채석장을 찾아서 재래식으로
돌을 절단하는 방법을 알아봤다.
-----------------------------------
* 채석장 관계자
쐐기 박아서 돌 절단하다.
-----------------------------------
- 돌 절단 13" 쐐기를 박고 10여분을 내리치자 돌은 쉽게
갈라졌다. 돌이 절단된 면엔 쐐기를 박은 흔적
이 선명하게 남았다.
그렇다면 이러한 쐐기를 이용하기 전엔
어떻게 돌을 잘라냈을까?
--------------------------------------
*채석장관계자
"그 이전에는 이만큼 삼각형으로 파고
대추나무 말려서 박아놓고 물을 부으면
대추나무 불어나면서
-------------------------------------
- c,g, 22" 3000년전에도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소재인 돌과 나무를 이용해 돌을 자르지않았을까
우선 돌을 이용해 구멍을 판 뒤 그 구멍에 마른 나무
를 박고 계속 물을 부으면 나무가 팽창돼 돌이
잘리는 것이다.이렇게 하면 돌의 잘려진 면에
돌로 쪼았던 흔적이 남게된다
처음 돌을 이용해 구멍을 팠기 때문이다.

# 매산마을 뒷산의 암석

- 산(세사람 찾기) 10" 매산마을에도 이러한 돌을 자른 흔적이 있는지
살펴봤다..암반에서는 어렵지않게 잘린 흔적을
찾을 수 있었다.
----------------------------------
*이영문교수 인터뷰
"쐐기를 박으면 절리면 때문-
그리고 여기서 이 면하고 이면 만지면 다르다.
매끄럽지못하고 우둘투둘한 것으로 돌을 이용해
팠던 것으로 보인다.
-------------------------------
- 돌 절단면 11" 이외에도 이곳의 암반에서는 돌을 이용해 자른
흔적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잘린 면이
모두 절리면-그러니까 돌에서도 비교적 쉽게 잘리는
사실도 알 수 있었다.

- 산에서 고인돌로 매산마을의 고인돌은 바로 뒷산에서
돌을 채석해와서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
스튜디오 5(고인돌무덤군)


이렇듯 고인돌은 그리 멀지않은 곳에서 채석해온 돌을 가지고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이 채석과정을 통해 우리는 이미 3000년전 이 땅에 살던 사람들의
돌 다루는 기술이 상당수준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미 쐐기의 원리를 알고 있었으며 돌의 절리면,즉 돌에도 잘 잘리는 면이 있다는 것을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그럼 이제 이렇게 잘라낸 돌을 어떻게 옮겨서 고인돌을 만들었을까하는 의문이 생기는
데요,우리는 고창군의 도움을 받아 직접 고인돌축조과정을 재연해봤습니다.
━━━━━━━━━━━━━━━━━━━━━━━━━━━━━━━━━━━━━━━━
VCR 5 고인돌 축조과정 복원 / 어떻게 만들었을까?

# 고창 행사 현장

- 돌 찾으러 가다.. 15" 고인돌을 직접 만들어보기위해서
우선 고인돌에 쓸 돌을 구해야했다.
덮개돌은 받침돌위에 안정감있게 올려져야하기
때문에 되도록 평평한 것을 골랐다.

- 포크레인 동원 돼있고 23" 이제 돌을 행사장으로 옮겨야했다.
돌 재고 우선 돌의 무게를 재기로 했다.
돌의 크기를 직접 재서 무게를 환산해보니
9.8톤..그러니까 키로그램으로 따지면 9800
키로그램이다.보기보다 만만치않은 무게였다.

- 돌을 끈으로 묶기 27" -현장음-
우선 돌을 굵은 끈으로 단단히 묶었다.

- 포크레인 보임 그리고 9.8톤의 중량을 들 수 있는 포크레인을
이용해 돌을 들기로했다.
현대식 장비를 이용했는데도
돌을 들어올리기는 쉽지않았다.
3000년전 고인돌을 만들땐 사람의 힘만으로
옮겨야했을 것이다.

- 축제준비그림 14"
지난11월 고창군에서 열린 고인돌축제행사중에
그동안 준비한 고인돌축조과정이 재연되었다.
일반적으로 어른 혼자서 들 수 있는 무게가
50키로라면 200명이 동원되어야 9.8톤의 돌을
끌 수 있다.
------------------------------------
*김병모교수 인터뷰
통나무를 잘라 구름마차 이용-
동앗줄을 만들 수 있는 자연섬유 있다.
구름마차 만들어서 밀고 당기고..
------------------------------------
- 준비된 돌 17" 통나무를 이용하면 훨씬 적은 힘으로 끌 수 있다.
땅의 상태나 통나무의 굵기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그냥 돌을 끌때의 절반정도의 힘이면 끌 수
있다고 한다.그러니까 9.8톤의 돌은
100명정도면 끌 수 있는 것이다.
우선 그 보다 적은 인원을 동원해 끌어보기로 했다.
-동원된사람 9" 동원된 인원은 85명-
통나무를 이용해 돌을 끄는 게 쉽지는 않았지만
돌을 조금씩 움직였다.
- 통나무 옮기고 21" 통나무를 옮기고 돌을 끌고 또다시 통나무를 옮기고
돌을 끌기를 반복했다.


이렇게 고인돌이 세워질 장소까지 70미터를
끌고 가는데 4시간이 걸렸다.

- 받침돌에 쌓인 흙 22" 이제 받침돌위에 돌을 올려야한다.
두 개의 받침돌사이에 흙을 쌓아 산처럼 만든 뒤
그 위로 덮개돌을 끌어올린다.

- 돌 파낸다 10" 돌을 받침돌 위에 완전히 올린 뒤에
받침돌 사이에 쌓았던 흙을 파냈다.
- 고인돌 모습 보이면 6" 흙이 제거되면서 고인돌이 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렇게 받침돌사이에 흙을 쌓아 산처럼 만든 뒤
덮개돌을 올렸던 흔적은 지금도 고인돌에
- 고창의 고인돌 10" 그대로 남아있다.
- 돌사이의 흙 8" 음악--

-----------------------------------
*이영문교수 인터뷰
"받침돌 덮개돌 사이에 흙 있다.
--------------------------------------

- 모양성 45" 이렇게해서 고창엔 또하나의 고인돌이
세워졌다.
━━━━━━━━━━━━━━━━━━━━━━━━━━━━━━━━━━━━━━━━━━━━스튜디오 6 (기본세트)


고인돌축조과정을 재현해봄으로써 우리는 한가지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바로 당시
사회규몹니다.
- 뒷화면에 우리가 만든 고인돌)
우리가 9.8톤의 덮개돌을 이용해 고인돌을 만드는데 동원한 사람이 85명입니다.
- 고창의 거대 고인돌)
그렇다면 매산마을에서 제일 큰 (고인돌을 가리키며) 이 고인돌을 축조하는데엔
얼마나 많은 사람이 동원되어야할까..이를 계산해보면 당시 매산마을의 사회규모를
유추해볼 수 있을텐데요, 우선 이 고인돌의 무게를 계산해봐야합니다.
이 고인돌의 덮개돌은 가로 3.10미터 세로 2.9미터..그리고 측면길이가 3.78미텁니다.
여기에 돌의 비중을 곱해주면 돌의 무게가 나오는데 97.3톤입니다.
우리가 만든 고인돌보다 거의 열배나 무거운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람들도 그만큼 많이
동원되어야 한다는 얘긴데요...직접 계산해보면 844명입니다.
그러니까 이 대형고인돌이 세워질 즈음 매산마을엔 최소한(강조) 844명의 인구가 살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고인돌축조과정에는 참여하지않았을 어린아이들이나 노약자를
생각한다면 이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이 살고 있었을 것입니다.
이들은 마을에 장례가 있을때마다 모두가 하나가 되어서 고인돌을 축조했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한가지 의문이 드는 것이 이들은 왜 이렇게 힘겹게 거대한 돌을
이용해서 무덤을 만든 것일까요?
━━━━━━━━━━━━━━━━━━━━━━━━━━━━━━━━━━━━━━━━━━
VCR 6 고인돌은 단지 무덤의 기능만 한 것이 아니다.

# 제단식 고인돌들

- 도산리 고인돌 27" 고인돌 중엔 무덤이 아니라 특별한 용도로
만들어진 것이 있다.
그 중 하나가 어느 민가의 장독대옆에 세워진
고인돌인데 이 고인돌에는 시신을 묻었던 것으로
보이는 무덤방이 없다.
원래 북방식고인돌은 네 개의 판석을 이용해
사각의 방을 만들어 그곳에 시신을 안치했다.
그런데 이 고인돌의 다리를 보면 중간이 불룩 튀어
나와있어 앞뒤에 막음돌을 세우지못하게되어있는
것이다.

-강화도 고인돌 14"
북방식 중 가장 크기로 유명한 강화도 고인돌도
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그렇다면 이건 무엇인가?
마을사람들이 한데 모여 기원을 하던 제단이었다.
신앙의 대상물이었던 것이다.

# 매산마을 컵마크 찾는 모습

- 매산마을 컵마크 21"
그런데 재미있는 건
무덤으로 쓰인 고인돌에도 이런 신앙의 흔적이
남아있다는 것이다.
고인돌덮개돌에는
돌을 이용해서 구멍을 판듯한 흔적이 남아있다.
-------------------------------------
* 김병모교수 현장음 및 인터뷰
... 이건..아니고..이건 아니고..
이거이거.
고인돌을 만들던 시대서부터 돌이 신통한
신비력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후세사람들
에게까지 이어집니다.
-----------------------------------
- 충북대앞의 고인돌 22" 이러한 흔적은 고인돌에서 어렵지않게 볼 수 있다.
현재 충북대학교 박물관앞에는 충북 옥천
에서 발굴된 고인돌이 옮겨져있는데 이 고인돌에도
거대한 구멍이 있다. 왜 이렇게 거대한 구멍을
냈을까..
------------------------------------
* 이정재인터뷰
돌은 아주 단단하고 오래-돌의 영구성과 불멸성
재생성들을 돌을 가지고 빗대어서 인간들은
자신들이 요구하는 걸 신앙-암석신앙 오지
않았나..
-----------------------------------
# 화순 고인돌 공원(테이프 4와5)

- 여수 고인돌 7" 이러한 돌에 대한 믿음은 여러 형태로 나타난다.
여수의 고인돌공원에 있는 고인돌에는
그림이 새겨져있다.
--------------------------------------
*이영문교수 해석
석검 있고 사람의 머리 부분
손을 모아 석검에게 받치는 형상
석검은 바로 신분을 상징하는-
어쩌면 자신의 선조-
--------------------------------------
- 돌의 그림을 C.G.로 뽑는다.

# 대구의 거북문양 고인돌

- 거북문양 19" 그런가하면 대구의 한 중학교 교정엔 독특한
문양의 고인돌이 자리하고 있다.
고인돌의 덮개돌이 거북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거북의 상징인
다산과 장수를 기원했던 것으로 보인다.
# 대구의 한 절안의 고인돌

- 절안의 고인돌 22"
고인돌은 단지 무덤이 아니라 신앙의 대상물로
여겨졌던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믿음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대구의 화장사라는 자그마한 절에 있는 고인돌은
지금까지도 마을사람들 사이에서
신통한 돌로 여겨지고 있다고 한다.
-------------------------------------
*양박사 인터뷰
이 곳에서 영험하다고 소문-
이곳에서 기도해서 아들을 낳았다.
----------------------------------
- 위의 고인돌 5"
3000년전 힘겹게 고인돌을 만들었던 건
이러한 돌에 대한 믿음때문이었다.
━━━━━━━━━━━━━━━━━━━━━━━━━━━━━━━━━━━━━━━━━━━


━스튜디오 7(그대로 고인돌 무덤군에서)


- 세계지도 나타난다)
그런데 이러한 고인돌은 세계 곳곳에서 볼 수 있습니다.영국,프랑스등의
유럽 일부지역과 지중해연안에 나타나며 인도,인도네시아등의 동남아지역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동북아시아에서는 중국의 요녕성지역과 일본의 규슈지방에 일부
나타나고 우리나라 전역에 많은 수의 고인돌이 있습니다. 이렇게 세계적으로 나타나는
고인돌- 그 문화의 중심지가 바로 한반돕니다.
━━━━━━━━━━━━━━━━━━━━━━━━━━━━━━━━━━━━━━━━━━━━

VCR 7..한반도는 세계 고인돌문화의 중심지다.

# 프랑스 까르냑 지역
- 잠시 음악-
- 프랑스의 고인돌 57" 현재 세계적으로 고인돌과 선돌로 가장
많이 알려진 곳은 프랑스 까르냑이다.
파리에서 서쪽으로 500키로 떨어져있는 곳에
위치한 까르냑지방엔 수많은 선돌들이 열을 지어
서있다.

- 두 사람 걸을 때 이러한 선돌을 보기위해 이 마을엔 1년내내
세계 각국에서 관광객들이 찾아온다.
-관광객들 공원을 조성해서 보기좋게 관리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은 보존에도 특별히 신경을 쓴다.
고인돌이 늘어서있는 잔디엔 담장을 쳐서
사람의 접근을 막고 있다.

하지만 이곳의 선돌은 규모만 클뿐 그 모양이
단조롭다.
더욱이 고인돌은 단 한기뿐이다.
그 수나 모양에 있어서 우리의 고인돌에는 훨씬
못미치는 수준인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옛선조들의 발자취인 거석문화를
소중한 문화유산으로 가꾸고 있다.
-------------------------------
* 모엥교수
"당시는 처음으로 공동생활을 하던 시대
강 가를 중심으로 마을을 형성,식물과
동물을 기르기 시작"
-------------------------------
- 동남아 19" 이외에도 고인돌을 볼 수 있는 지역은 동남아시아다.
이 곳의 고인돌은 규모가 그리 크지않으며
형식도 단조롭다.우리의 남방식을 닮은 것 뿐이다.

- 중국의 고인돌 6" 중국에도 고인돌은 있지만
그 수가 아주 작고 모양도 우리의 북방식을 닮은 것
뿐이다.



- 한반도 지도 12" 이에 비해 한반도에는 수많은 고인돌이
전국적으로 분포되어있으며 한 지역에서도
다양한 형식의 고인돌을 볼 수 있다.

-고창 20" 바로 그 대표적인 지역이 고창이다.
길게 세운 받침돌위에 판석을 올린
전형적인 북방식이 있는가하면
거대한 돌을 자그마한 받침돌위에 올려놓은
남방식도 있다.

-마을 줌인 11" 그런데 이 지역엔 독특한 형태의 고인돌도 보인다.

- 돌 돌아가며 14" 길가에 세워져있는 이 고인돌은
덮개돌은 두꺼운 남방식이지만 받침돌은 긴 판석을
세워놓은 북방식의 형태를 띠고 있다.
그리고 한쪽으로는 자그마한 돌을 하나 더 받쳐놓
았다.
------------------------------------
* 전영래교수 인터뷰
"북방식에 속하지만은 북방식과 다른 점은
위의 중량이 많아졌다는 것-
밑에 벽석 한쪽 기울어지다.
그래서 그 뒤에 보조지석을 괸 것이다.
북방식으로 보조지석을 괸 건 이것이 최초다.
이것이 남방식 지석묘로 이동해가는
최초의 실마리다.이렇게 얘기할 수 있다.
---------------------------------
- 보조지석 고인돌 17" 그러니까 이 고인돌이 존재한다는 건 이 지역에서
고인돌의 형태가 서서히 변화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오랜기간 고인돌문화가 이어졌다는 의미기도
하다.
------------------------------------
* 모엔교수 인터뷰
---아주 훌륭한 지역이다.세계에서 현재
발굴된 지역 중 가장 아름다운 곳이다.
------------------------------------
- 고인돌 떼샷 24" 3000년전 이 땅엔 오랫동안 고인돌문화가 존재했다
그 문화의 흔적은 지금도 고스란히 남아있다.
이 땅은 "세계 고인돌문화의 중심지"인 것이다.
━━━━━━━━━━━━━━━━━━━━━━━━━━━━━━━━━━━━━━━━

클로징(처음의 고인돌무덤군에서)


고인돌이 하나 존재한다는 건 제법 규모가 큰 공동사회가 존재하고 있었음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그 사회는 정신적으로나 물질적으로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발전된 사회였
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고인돌이 오랜 기간에 걸쳐 그것도 아주 많은 양이 축조되었
다는 건 3000년전 한반도는 아주 역동적인 땅이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최근 고창과 화순지역의 고인돌이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에 예비등록됐습니다.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그 수가 많고 모양이 다양한 한반도의 고인돌을 세계가 주목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3.000년전 이땅에 살던 사람들의 삶의 결정체인 고인돌-

지금 그 고인돌이 되살아나고 있습니다.
━━━━━━━━━━━━━━━━━━━━━━━━━━━━━━━━━━━━━━━━━━━

테이프 1

# 강화도 부근리 고인돌
- 고인돌 타이트한 컷트들
- 고인돌 살펴보는 PD
- 먼발치에서 줌인
- 팬,아주 먼발치에서 줌인(쓰기 어려운 그림)
- 차 트래킹
아쉬운 점) 그림으로는 마을의 어느 위치에 어떻게 세워져있다는 건지 알기 어렵다.
어떻게 찍어야했을까?

테이프 2

# 고창지역,행사용 고인돌 보러 다님
# 하나의 고인돌 앞에서(기둥돌앞에서)
- 요거 밑엣걸로
= 이 은 고인돌의 기둘돌로 사용할려고..3분의1정도는 지하로 들어가고 3분의 2정도 지상-
이걸 기둥돌로 사용하고 작은 걸로 막음돌
# 고인돌 보러간다.
# 덮개돌앞에서
= 저희가 이번 고인돌 축조재연에 사용할 돌인데 폭이 2미터50정도 넓이가 1미터 60
높이가 60-70,이 정도 무게면 6톤정도-재연할 수 있는 돌로서는 적합한 돌이라고
생각
- 나르기 힘들겠네
= 전문가 동원..포크레인 안되면 중장비 동원 예정
# 덮개돌 타이트
# 덮개돌 살피는 피디
# 현대식 채석장
# 논 밭 사이에 있는 고인돌들
# 채석장관계자 인터뷰(채석장 소리 때문에 시끄러워서 오디오 쓸 수 있을까?)
- 이 돌이 채석장 돌과 같은 것?
= 그렇다.
- 돌 종류는?
= 화강암
= 제가 경영하는 채석장 돌과 재질이 같다.
- 어떤 재질?
# 고인돌들
# 화순지역,피디,이,김박사
# 경노당앞 마당의 고인돌 살핀다.
# 집담장의 고인돌
# 걸어가는 피디와 사람들
# 일하는 사람들 뒤로 고인돌
# 고인돌 보러 다니는 피디와 두사람


# 이영문교수 인터뷰
= 지석이 있고..길이가 10미터 넘다.폭이 4미터 높이도 4미터
-어떤 기능?
=제단식,벌판을 내려다보는 위치,잡목이 없으면 그냥 주위 볼 수 있게 돼있다.
-교수님 채석의 흔적?
=이 암석은 --로 이 면이 절리면,이 면이 잘라진 면의 증거로는 불충분
-자연그대로?
=지금 봐서는 채석장에서 온 것같지는 않다.
# 돌의 절리면 측정하는 김박사
# 인터뷰
= 절리면은 보통 셋방향 나온다..이 방향은 이 방향 나온다.
- 절리면은?
= 절리면은 화산암이 굳으면서 식으면서 용적의 수축으로 인해서 돌 속에 있는
미세한 틈..
# 고인돌에서 돌 채취하는 김박사
# 마을사람들 교수가 인터뷰..인터뷰 의미 없음
- 무슨 바위
= 빈들바위

테이프 3

# 화순지역으로 들어가는 차 트래킹
# 고인돌 밀집지역으로 걸어들어간다.
# 나무사이의 고인돌들
# 이영문교수 인터뷰
= 이것이 고인돌 밑에 들어간 무덤방..덮개돌은 없어진 형태.이 자체가 지상으로 노출되어
있다.변형된 북방식 고인돌..네매가 되어있고 두께가 같고..남방식의 무덤방과 북방식
무덤방 차이는 북방식무덤방은 두께가 15센티 이상..이 지석으로 쓰였던 무덤방 석재자체가
덮개돌을 그대로 떠받치고 있다.15센티 넓으면 30,40센티까지 나온다.이건 위에 없어지고
밑에만 노출된 것
- 이게 무슨 돌?
=김)서경반암
- 주변에 모두 이 돌?
= 주변암석분포와 대단히 - 이 주변에 분포한 암석과 흡사.
- 이 지역 고인돌 모두?
= 현재 모두 같은 암석으로 추정된다.
- 특성은?
= 이 암석의 특성은 반심-암으로서 석영결정이 선명,색깔은 비교적 담홍색
- 강한 암석?
= 암질은 강하다.
이 암석은 한반도의 화산작용과 관련된 것으로 한반도에서 흔히 관찰되는 암석이다.
# 돌들 보여준다.
# 고인돌옆에서 이교수 인터뷰
= 이건 남방식 고인돌..그러니까 우리가 흔히 보는 덮개돌이 웅장한 남방식이 아니고
덮개돌이 납작하지만 지석을 다 괴어서 파괴됨을 방지하는 것-이것은 무덤을 쓰기위한
하나의 고인돌-제단이나 집단의 묘표석은 상당히 웅장-지석이 둥근 계통의 지석이 많다.
# 이영문교수 서서 인터뷰
- 이 지역이 어딘가?
= 전라남도 화순군 춘양만 대신리 지덕마을
- 이쪽 고인돌 특성?
= 채석장 200미터 범위안에 보여주다.
고인동리 무덤임을 보여주는 무덤방이 노출된 석실까지 고인돌을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는 곳
- 채석장에서 얻은 건 어떤 식으로 옮기나?
= 여기에서는 약간 경사-옛날 지렛대라든지 통나무를 이용해서 옮겼다.
이런 경우 통나무 보다 지렛대를 많이 사용했을때..지형적인 건 악조건
= (고인돌타이트)이 고인돌은 특징적인 것이 북방식의 고인돌의 지하석실..요소를 그대로
가지고 있다. 주변 고인돌을 보면 약간 노출되어있는 반 지하식-그런데 석실 얕다.
그건 과도기적인 형태-
# 돌 타이트
# 또다른 돌에서 돌 채취하는 김박사
= 이 암석은 산성화산암으로 추정된다.화산재가 쌓여서 형성된 암석-
# 돌을 비닐봉지에 넣는 김박사
# 고인돌들
# 하나의 돌앞에서
- 이게 어떤 흔적?
= 이것을 채석을 하기위해 구멍을 박았던 흔적이다.
여기서 쐐기를 박아서 물을 부으며는 나무의 팽창력에 의해 돌에 금이 간다.
이 앞이 떨어져나간 흔적
여기 채석했던 흔적 보인다.
- 그렇게 보이나
=김)이건 바위의 절리면을 이용해서 암석을 뜯어낸 흔적처럼 보인다.
# 채석된 돌
# 갈라진 고인돌 앞에서
- 이건 어떻게?
=김)--암으로 조인트 잘 나타난다.끄러나 이 암석의 전체적인 걸 봤을ㄸ
수평은 빈번히 발달..수직은 그 관찰이 드물다.현재 이 암석은 인위적인
조작에 의해 틈이 형성
=김) 현재 이 암석은 5미터 구간내에서 단 한군데에서 틈이 발견-
이는 조인투에 의해서 형성된 틈이 거의 완벽한 직선형태에 비해
비교적 약간 구부러져있고 조인트의 빈도로 봐서 이 틈은 인위적으로 형성
조인트란 환산암이 식으며서 수축에 의해 셩성된 틈-
계속해서 여러번 시도...))
# 돌 해당부분 타이트
# 이영문인터뷰
=이런 것들이 암벽 떼어냈던 자국들-이 암벽을 정확히 나타낸 건
-이게 흔적?
=여기서 파가지고 쐐기 박고 떼어나가고 남은 자국
- 선생님 보기?
= 김)여기 암석의 이런 단면은 풍화적이라기보다 인위적으로 ㄸ어낸 것으로 보인다.
- 큰 차이는 풍화와 인위적인 것의?

=암석이 풍화될 때 주로 약간 마모된 즉 다시 말하면 타원형형태 보여주는 게 많다.
그리고 각 모서리가 예각을 형성하는 걸로 봐서는 암석 절단
=이)여기 이제 암반에서 앞의 뭔가를 떼어냈던 흔적 여기있다.
# 암석들 타이트

테이프 4

# 암반의 돌 깬다.
# 비닐 봉지에 넣는다.
# 고인돌에서 산으로 팬
# 고인돌 파보며 인터뷰
- 이건 굄돌이 네 개?,석관까지 있는가?
= 돌이 매몰되어서 잘 안보인다.이건 제단식,상징적인 기념물로 봐야한다.
이런 경우 높은 대지에 있으면서 이 근방 집단의 기념비적인 것-
마을입구보다는 외진 곳에다가 제단적인 성격-
즉 지연적인 집단들의 상징으로 봐야한다.
싱읃제라 무덤의 용도가 아니라 묘표석 씨족의 상징적인 기념물-
= 족장으로 보려면 그에 상응하는 유물이나 패턴이 같아야-
무덤이 같으면서 유물 나온 것도 있고 아닌 것도 있고 그리고 군집되어있다는 것
이는 혈연집단의 묘역-
- 지배계층의 묘역 아니라?
= 그러니까 고인돌군,지배계층 유력한 집단들의 무덤은 있다.왜냐하면 수량이 많고
부장품이 석검같은 상징적인 것들이 출토된 확퓰이 높다.
- 족장의 무덤?
= 청대기시대 와서 조상수배ㅏ삳
# 마을의 고인돌들 트래킹
# 고인돌의 컵마크 찾아주는 이교수
-이게 성혈?
=에
-언제 갈린지는 아나?
=잘 갈고 의식을 했던 것-
-후대에 만들어질 가능성은?
=그러죠.후대에 만들어질 가능성 있지요
-그 당시에 만들어질 가능성은?
=?
# 돌들
# 고인돌공원에서 즐기는 사람들
# 공원에 전시된 무덤방 내부구조
# 이영문교수 인터뷰
-이 지역이 발굴당시 모습을 그대로 재현?
=네
-하나의 무덤방
=네 무덤방이고 이렇게 돌 세 개 놓여있다.이것은 시신을 받쳤던 시상대역할
-그럼 이렇게 무덤방이 작은데 시신 들어갈 수 있나?
=이런 경우는 굴장..몸을 굽히는 것
-다른 장례풍습?
=세골장같은 생각 가능
-세골장 설명?
=우리말로 두벌묻기..사람이 죽었을 때 야외 방치해 살 부패..3년 지난후에
뼈만 갖다가 모아서 묻는 것..그럼 폭도 좁아질 수 있고 그것이 가능
-무덤방에 한사람만?
=지금까지 나온 인골로 보면 우리나라 경우 한사람 묻기위해 하나의 무덤방
하나의 덮개돌
-외국은?
=두명에서 수십명
-뚜껑돌은?
=바로 옆에
=평행..나란히..멀지않은 시기에 같이 묻혔다는 이야기..배치를 그때 있던 상태
그대로 배치시키다.50여기 분포
# 돌들 비추다.
=(무덤방 보며)시신이 누웠던 바로 위-돌이 두 개만 까는 경우 있고 하나만 까는
경우있고 하나도 없는 경우 있고..바닥석이 있는 경우가 부장석이 있는 경우 많다.
또 석실이 크고 폭이 넓은 경우 이런 경우 부장품이 훨씬 많다.
이런 식인데 커요..이런 경우 부목의 힘을 받아야.여길 쇠정을 대면 여기에 힘을
줘서 때리면 벌어지고 뚝 떨어진다.
-청동기시대 이와 비슷
=쇠가 없기ㄸ문에 마른 나무를 박아서 물을 부으니까 팽창력에 의해 떨어져나갔다.
# 돌 채석하는 모습 모형으로
# 모형으로 돌 옮기는 모습

테이프 5

# 강앞의 고인돌공원
# 움막
# 돌에 새겨진 그림
=석검인데 자루 끝부분이죠..여기서 이렇게 와서 여기서 이렇게 지금 내려온다.석검
있고 옆에 사람있는데 사람 머리부분 허리 무릎을 끓고있는 자세 손을 모아서 석검에
게 뭔가를 받치고 있다.옆에는 머리고 허리를 ㅅ자형으로 서있다.이쪽에 팔을 했는지
여자 가슴인지 농담으로 임신한 여자라면 순산을 기원하는 남자의 모습 아니냐-
석검은 신분을 상징하는 선조를 대신하는 것-
정확히 이건 뭐라고 얘기 못하다.여기 보면 비피형동검 비슷한 형상-
때리면 나간다.(ㄸ려봄) 부식 됐지..여기만 있는 게 아니라 여기 창같은 느낌
창을 찌르는 형상-여기서 이렇게 되어있고 무슨 형상인지 모르겠다.
완전히 파여있는 이거 여기 약간 이어져있다.이렇게 되어있는데 을자 비슷한데
어떤 형상인지 모르겠다.이쪽에다 있다.
# 고인돌 그릶부분 타이트하게
# 이웅조교수 슬라이드 보며 인터뷰
= 이 고인돌은 충북 옥천군 동면 석탄리 안터 1호라고 불려지는 고인돌이다.대청댐
수몰지구 조사로 저희 충북대학교 박물관에서 1977년에 발굴한 고인돌-덮개돌
이렇게 보이지.덮개돌 들어내보니까 다음과같이 유구의 형태 만들어지다.커다란
굄돌이 나란히 놓이다.그 굄돌들들 들어내보니까 여기서 중요한 자료 나오다.
여기 보이는 자갈동 중요한 것임을 알게되다.그걸 좀 더 보니까 역시 굄돌이
얇은 것 이쪽에는 둘레돌이 많이 놓여있었다.큰데는 별로 없다.앞서 본 자갈돌
여기 있다.여기 자갈돌에는 찾을ㄸ부터 자갈돌에 선각이 되어있는 걸 알게되다.
이 자갈돌은 맨 밑바닥에 있다.다음과같은 모습을 선각된 자갈돌-이 자갈돌은
흔히 주변에서 보는 돌로 면이 아주 판판한 면을 골라서 만들다.여러분 보시다
시피 선을 여러차례 새김을 하다.전체적인 인상이 사람얼굴로 보이게끔 만들다.
우리는 이 얼굴로 여러 가지 해석했는데 바로 이 얼굴은 죽은 사람을 나타내는
여인상으로 해석하다.여기는 여러 가지 해석의 근거를 제시하기도 하다.결국
죽은 사람의 초상화를 제일 밑바닥에 묻고 사람을 묻고 고인돌을 올린 것으로
보다.발굴한 장면이다.이 둘레는 이런 끝이 뾰족하고 밑이 납작한 돌들이 줄을
이루고 있다.여기는 세겹이상 있었는데 죽은 사람의 영혼을 지켜주는 지킴돌로
해석하다.이러한 지킴돌이 이 주위에 있어던 것으로 해석되다.또한 여기에는
붉은 흙을 뿌려서 놓다.고인돌둘레에 여러군데에 해놓았는데 이는 일부러
다른데서 가져온 것으로 이는 고인돌에 묻힌 사람이 영생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한 것-그런데 여기에서는 또한 우리를 놀라게한 건 빗살무늬 토기-세조각이 붙는
것으로 빗살무의 후기 형식이 여기서 나오다.그래서 우리는 고인돌이 신석기후기
형식이라는 결론에 도달-고인돌에서 200미터 떨어진 곳에 선돌이 있다.선돌이
처음에 있을떈 이만한 높이로 지표 되어있다.결국 이 밑에는 그 당시는 몰랐던 것
그런데 지표 조사할ㄸ 날카로운 연모로 둥근부분 만든 걸 알게되다.발굴해보니 이런
모습-선돌 둘레 손질되다.이걸 보니까 여성을 나타내는 선돌이고 머릿부분 배부분이
상당히 불룩-그 중앙에 둥근 원 나타내다.이는 임신을 나타내는 해의 모양.그래서
결국 여기 서있는 선돌과 고인돌 해석하면 고인돌은 죽은 사람을 묻고 초상화를 봤고
죽은 사람의 상징적인 의미로 이런 선돌이 만들어지다.이 둘은 모두 충청북도의 기념물
또한 이 선돌도 안터부락의 선돌 중 하나-이건 끝이 뾰조갛며 줄이 많이 있다.나는 이걸
줄무늬선돌로 부르는데 줄무늬 있으며 주위 손질-이는 지금까지 완전한 해석 내리지못하
지만 남성을 나타내는 선돌임이 분명-이는 다른데의 연구자료 비교해서 고찰해야함
여기에 보이는 그림은 지금은 제천시로 되었지만 당시 황석리 유적-이미 벌써 충주댐으로
수몰되기위해 집 피하다.남한강-강무리현상 죽 흐르다.이런 강 흐름과 나란하게 고인돌이
있는 걸 40여기 조사-찾은 것중의 하나가 이런 덮개돌-학계에서는 이를 남방식 고인돌-
무너진 듯
또다른 고인돌이다.충북대에서 발굴했다고 해서 충7호 고인돌이라 부름-여기 막대가 2미터
로 본다면 그 크기 짐작될듯-덮개돌을 들어내서 봤더니 이런 모습-조금 안된 것은 덮개돌이
작아서 사람얼굴 부분을 쟁기로 쳐서 얼굴부분 다 나가고 여기 땅콩밭-들쥐들이 뼈를 없앤 듯
재미있는 건 여기 뼈가 사슴정강이 뼈-다시 말해 머리위에 사슴정강이 뼈-이는 그 시대사람
정신세계 보는데 중요-그런데 그 옆에는 이런 항아리가 나온다.붉은색 간토기-여기서 나온걸
붙여봤더니 이렇다.높이 26센티되는 붉은색 간토긴데 여기 보면 이런 무늬가-지금은 탈색되어
서 그 무늬 정확히 안나오지만 높이 26센티나 되어서 상당히 높은 간토기-간토기를 무덤에
묻혔다는 걸 알 수 있다.이런 토기가 지금까지 함경북도 중심-경상남도 진주 사천지방 있어서
동해안 거쳐서 바로 함경도에서 이쪽 경상남도로 간 것으로 했습니다만 황석리에서 이런 자료
상당히 많이 나오다.황석리에서 나온 붉은색간토기는 제기로만 쓰인 것이 아니라 생활용기로
썼던 걸 묻다.아주 중요한 자료다.
여기서 발굴된 치레걸이다.색깔이 에머럴드빛..물색깔 같은 것-더구나 우리의 관심을 크게 끈 건
전체 모양이 어떤 사람은 물고기모양-그러나 나는 사람의 초기 모습-뱃 속의 모습-사람의 가장
원초적인 모습 갖추고 있다.이 외에 여기있는 건 대롱구슬-다시 말하면 꽂아서 끈을 매서 쓸 수
있는 것-한가지 여기서 주목되는 건 이 색깔들이 거의 물색-이는 이 고인돌이 묻혀있는 유구의
방향이 물흐름과 같고 또한 머리방향이 물흐름방향과 일치한다고 본다면 당시 사람들이 물과
깊은 관련이 있다.이 사람들이 물에서 갖는 영생,회귀아닌가로 해석-고인돌과 그 당시 사람들이
물과 깊은 관련,물을 통해 농작물 번성,영생을 바라는 믿음도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고인돌도 황석리에서 발견되다.흔히 봤을ㄸ 북방식 고인돌 아닌가...
여기에 고인돌도 황석리에서 발굴된 하나.우리는 이것을 충13호 고인돌이라했는데 처음에는
북방식 고인돌의 한예-여기 굄돌이 모두 판돌 미워져있다.막음돌 있음은 --
여기서 우리는 몇가지 사실 유추-우선 고인돌의 크기 아주 작다.
1미터도 안되는 그다음 요것이 너비가 좁다.그럼 여기 묻힌 사람은 키가 1미터밖에 안되냐
2차장이냐..저는 역시 1차장으로 봐야하지않느냐..또한 그리고 이 형식은 북방식고인돌과
또다른 형식-우리는 이걸 독특한 황석리식 고인돌
또한 이 자료는 사람이 묻혀있는 곳의 오른손 닿는 곳에는 간돌검-직접 손으로 돌검 잡을
수 있도록하다.이런 간돌검은 죽은 사람의 머리방향을 알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자료
또한 이런 자료 봤을ㄸ 여기 묻힌 사람의 성별이 남자라는 걸 해석할 수 있다.
반달돌칼도 여기서 나오다.
그리고 여기서 고인돌 발굴하면서 두 개의 잘생긴 선돌있다.
이 선돌을 옥천 안터 고인돌처럼 발굴하다.
하나는 끝이 뾰족 하나는 판판-동네사람들도 판판은 여성..뾰족한 건 남성으로 해석-
남성선돌이 여성선돌보다 작다.
이 자료는 충북대학 박물관에 이전해서 잔디밭에 갖다놓았는데 여기쪽에 요만큼 흙이 덮여있다
흙을 벗겨 발굴해보니 돌 죽 놓이다.돌의 판판한 면을 위로 하고 반원을 그리다.다시 말하면
이 돌들이 반원을 된 돌을 이렇게 바라볼 수 있도록 하다.판판한 면을 갖다놓은 건 일부러
반원도 일부러-그럼 왜 이렇게 갖다놓았나?이건 의자-다시 말하면 앉아서 뭘 얘기할 수 있는 것
오스트리아 학자가 인도에 비슷한 자료 있다.이건 선돌을 중심으로 해서 회의를 했던 성스러운
장소다.마을의 중요한 사항,족장 뽑거나 마을의 이사 .전쟁등이 족장앞에서 맹세하는 것-

(계속)





공지   (처음방문/필수) 동영상 특강 '우리역사의 줄기' [3]  관리자  2006/01/21 23553 900
11710   (답변) 논평과 “하늘에 새긴 우리 역사" / 삼국사기 초기기록을 왜 불신하는가 ? [10]  관리자 2004/07/02 22051 923
11709   (coo2.net과 함께하는 민족사서들) [1]  관리자 2005/10/05 18201 926
11708   (윤내현) 강단사학의 악행들... 홀로서기 그러나 외롭지 않다” [4]  관리자 2005/04/08 16931 944
11707   (한국우리민족사연구회) "동이 연표" (밝혀지고 있는 우리역사) [4]  관리자 2006/02/02 15147 810
11706   (답변) 동이가 우리민족이 아니라는 것은 무식의 소치 [2]  관리자 2007/09/20 13898 399
11705   주요자료 및 보조자료실  관리자 2005/07/31 13239 839
11704   (민족사서 읽기 켐페인)(1탄) 진본 '규원사화'를 읽자 [1]  관리자 2005/12/02 12637 746
11703   (답변) 함초(鹹草) 관련 [2]  관리자 2007/07/12 12348 599
11702   식민사학 '변종사학(變種史學)' 박멸 사이트!  관리자 2009/09/10 12027 215
11701   (하루에 세번/실천운동) 천부경(天符經) 노래 듣기  관리자 2008/07/26 11883 340
11700          (4) 진장성 일대 중국군사지도 (장성확인)  송준희 2003/03/13 11353 983
11699   (홍보팜플릿) 우리역사는 9200년전부터 시작되었다 [1]  관리자 2006/06/15 10929 178
11698   한국에서 드디어 가림토 발견됬다는데 .. [2]  ziosaki 2003/03/13 10911 926
11697     (1) 고대 갈석산은 산서성과 하북성 경계에 존재  송준희 2003/03/13 10735 827
11696        (3) 진장성은 태행산맥을 넘지 못하였다  송준희 2003/03/13 10557 1037
11695     (2) 갈석산 관련 고지도  송준희 2003/03/13 10426 838
11694   천부경 - 지축이동 (수정본) [2]  학생 2003/03/13 10417 897
11693   九黎 ? [1]  XXXX 2003/03/12 10270 937
11692   운영자님 - 여호규를 아십니까? [4]  신용일 2003/03/14 10196 913
11691   (요청자료) 삼국 및 일본고대 일식기록 분석 논문 다운 및 살펴보기  관리자 2008/05/21 10174 406
11690     [re] 한국에서 드디어 가림토 발견됬다는데 ..  whqhdqo 2003/03/23 10003 870
11689     (참고) 지축이동에 대해  송준희 2003/03/13 9881 751
공지   (우기수 원장 작) 천부경 노래 동영상 [5]  관리자  2009/07/03 9868 234
11687   事大 과연 부끄러운 역사인가? [4]  천마강림 2003/03/17 9782 952
11686   (사진) 경북 경산 발견, 가림토 추정 '바위 글' [1]  송준희 2003/03/14 9603 752
11685   (기사) 고대사 식민사관 벗어날 계기로, ‘삼국사기’ 불신은 식민사관의 유산  송준희 2003/03/19 9544 810
11684   (황당무계 망상소설) 소설 삼국지를 읽으면 인간이 교활해진다  관리자 2010/07/17 9514 173
11683   (김용만) 환단고기에 나오는 고구려-북주의 전쟁 지역인 배찰산 위치 문제  송준희 2003/03/13 9365 824
11682     [re] 소簫는 동이족의 전통악기(강족羌族, 퉁소-羌笛을 西漢에 전파하다)  솟대 2008/11/06 9310 92
11681     (답변) "구리(려)"를 기준으로 하는 이유  송준희 2003/03/13 9300 825
11680   만리장성에 대한 질문  진성수 2003/03/19 9295 812
11679   (공지) 자료이전 작업 관계로 신규자료게시가 늦어지고 있습니다  송준희 2003/03/15 9164 642
11678   (답변) 음산산맥 위치  송준희 2003/03/16 9067 591
11677   "흥부가" 속에 나오는 갈석산의 위치는 어떻게 돼나요?  궁금증 2003/03/18 9017 822
11676   천문관측기록에 대해서..... [1]  송인우 2003/03/18 8960 748
11675   백제의 진평2군 위치 및 요동/요서  송준희 2003/03/17 8881 654
11674   우적도에 대해서 - 과연 지고 지순한 가치를 지닌 자료일까 의문이 생깁니다. [1]  천자문 2003/03/19 8831 880
11673   운영자 칼럼에서 태조왕건에서 추허조는 언제 죽었는가?를 보며...  돌아이구 2003/03/22 8804 377
11672   우주는 하나(엑스타시님 글) [1]  송준희 2003/03/16 8731 830
11671   환국의 영역을 짐작하는 지도/남북이 5만리,동서가 2만리 [3]  잃어버린혼 2003/03/20 8726 638
11670   염장 지르다  송준희 2005/07/29 8604 168
11669     (답변) 진장성  송준희 2003/03/19 8524 666
11668     [re] 고려가 만주를 차지했다면.. [1]  도래미 2003/06/20 8522 81
11667   한자 풀이좀 부탁드립니다. ( 沽水 = 沽河 = 潮河 + 海河 ??? )  궁금증 2003/03/20 8427 617
11666     [re]세종, 소簫로 황종척黃鐘尺을 만들다(동이족의 오랜 전통)  솟대 2008/11/06 8276 408
11665   감사.... 그리고 부탁 [1]  이진욱 2003/03/17 8237 700
11664     [re] 그곳은 감숙성 돈황(燉煌) 부근, 환인조선이 처음으로 건국했던 곳임  朴民宇 2003/03/20 8236 473
11663     지도地圖 보충 짧은 문장 하나 [1]  도래미 2003/03/17 8226 640
11662     [re] 천해의 동쪽 땅  朴民宇 2003/03/20 8201 482
11661   우리모두 새로운 마음으로, 전체도 부분도 일치되는 역사를 위하여 노력합시다  오재성 2003/03/18 8101 552
11660   일본의 고대신화에서. [2]  민두홍 2003/03/19 7966 610
11659   (홍보팜플릿) 사서, 천문학, 기상학에서 입증 되었다  관리자 2006/06/15 7949 158
11658   (방명록)옆에 새로운 코너를 만들 의향은..... [1]  이용하 2003/03/12 7836 653
11657   山海經(산해경)의 天文的(천문적) 접근 2  李開春 2003/04/16 7650 396
11656   필리핀 마닐라에 있다는 왕릉들은??  天龍 2003/05/13 7638 390
11655   중국에서발견되었다는8000년전도자기에대해알고싶습니다  무식쟁이 2003/03/20 7518 409
11654     저도 잘 모르지만은  황석공 2003/03/24 7512 260
11653   여기서 쉬어가도 될까요?  이용하 2003/03/22 7356 473
11652   (요청자료-1) 미국 사이트 피라미드 자료 [1]  송준희 2007/02/27 7316 267
11651   중국 금나라 시조된 마의태자 후손 [1]  심심나라 2003/04/16 7307 152
11650   대륙고려 및 대륙조선사에 대해 궁금합니다 [1]  이재원 2003/03/22 7281 457
11649     [re] 도리기 자료를 올려주시길  조언 2003/03/20 7269 463
11648   '스톤헨지' 인근에서 마을 유적 발견 [1]  송준희 2007/02/01 7263 69
11647   창해역사 <여홍성>의 기록이 궁금합니다. [1]  이용하 2003/03/22 7177 367
11646   저기요..질문있는데여 한단고기의 내용을 영어로 번역해놓은 사이트아시나여?  잃어버린혼 2003/03/21 7152 363
11645   PAX SINICA관련 [2]  天龍 2003/04/16 7098 362
11644   지도 보단 이게 낫겠죠.. 구글의 인공위성 영상 서비스 [4]  안파견ㅋ 2005/09/03 7072 212
11643   황당한 질의를 해도 될련지요..  강동균 2003/03/28 7048 216
11642   天文解字<舟> 그림은 운영자님께 파일전송합니다.  이개춘 2003/04/20 6974 311
11641   궁금점: 왜 장지연의 조선강역도에 한사군은 한반도에 그려져있나? [1]  돌아이구 2003/03/22 6873 439
11640   (#) (다시보는 동영상) 한단고기 - KBS방영내용  관리자 2007/12/16 6857 135
11639   (답변) 영화 터미네이트는 마야력에서 착안 한 영화  관리자 2009/05/26 6739 60
11638   (답변) 최태영 박사가 이병도 박사를 설득하여 '한국상고사' 책자가 나온것은 사실입니다  관리자 2007/09/20 6715 257
  (요청자료) 한반도는 고인돌의 천국, 프랑스는 1기에 불과  송준희 2006/10/11 6686 103
11636   홍산?문화가 무엇인가요? [1]  바로알자 역사 2003/03/22 6651 393
11635       글은 잘읽었습니다만...  황석공 2003/03/24 6635 216
11634    (5) 수운하 "영제거, 통제거"  송준희 2003/03/13 6595 391
11633   뭐좀 물어보겠습니다.  황석공 2003/03/24 6592 210
11632   오재성 선생님 저서에 대한 질문 [2]  宋始永 2003/04/05 6581 296
11631   (기사) 내년 국운 역술가는 알고 있다.  송준희 2003/09/15 6571 161
11630   "장기 종주국은 중국 아닌 한국"  지수 2003/04/01 6552 170
11629           답변입니다.  황석공 2003/03/25 6547 211
11628   貊국에 관하여..  한희수 2003/05/08 6506 263
11627   처음 오시는 분들은 새로운 홈피 "우리역사의 진실" 을 보세요 [3]  관리자 2011/12/12 6500 55
11626     [re] (답변) kbs 방영내용  관리자 2010/04/22 6468 44
11625   중국 에서 발견된 1600년전의 고구려 천문 비문 [1]  고려인 2003/04/07 6463 196
11624   추천사이트에 올려놓으면 어떨까요?. [1]  이용하 2003/03/22 6460 332
11623     [re] (동영상) 샘 세미르 오스마나지크 박사의 잃어버린 보스니아 피라미드 1/3부  관리자 2013/04/20 6454 15
11622   도움이 될것 같아서 퍼옵니다.  ..... 2003/04/13 6412 244
11621   한사군 대동강 중심설을 취하는 학자는 이병도, 서영수, 노태돈, 조법종, 송호정  관리자 2007/09/12 6394 325
11620     [re] (요청자료) 한반도는 고인돌의 천국, 프랑스는 1기에 불과 (2)  송준희 2006/10/11 6364 135
11619   桓國과 배달국과의 정통성 관계 [1]  韓아리랑檀아사달 2005/05/27 6345 452
11618   海에 관하여...  동원 2003/06/16 6302 247
11617   漢族의 고구려 역사유적 말살 실태  고구려 소고 2003/08/13 6211 254
11616    *조선의 영토가 분명 대륙에 있었다는 삼국지 동이전 ! [5]  문 무 2005/02/20 6210 350
11615   나무로 된 '스톤헨지' 고대유적 발견  관리자 2010/07/27 6202 49
11614   자금성 유물 공동조사  관리자 2010/07/08 6196 53
11613   요동과 요서의 정확한 위치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2]  김강빈 2003/03/24 6163 338
11612   中國 이란 용어에 대해...........  도래미 2003/06/05 6160 237

1 [2][3][4][5][6][7][8][9][10]..[118] [다음 10개]
 

Copyright 1999-2014 Zeroboard / skin by zer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