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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5-12-04 14:15
대수맥님의 앵무새 죽이기_낙랑군의 역사_3_1편_수성현_갈석산_요수의 위치문제
 글쓴이 : 최고관리자
조회 : 5,050   추천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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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앵무새 주장 3] ■■■■■■■■■
(두 번째 부류-바보 같은 이야기)

http://www.coo21.rgro.net/bbs/zboard.php?id=data_art&page=1&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174

[3-1] 수성현遂城縣*갈석산碣石山*요수遼水의 위치 문제

앵무새 본문은 생략
대수맥님 논증글만 소개

■■■■■■■■■■ [논증論證 3] ■■■■■■■■■

(난독증에 이해력 부족까지 겹쳐 뒤죽박죽인 괴이한 주장?)

필자筆者도 [앵무새]가 말한 두 번째 부류의 이야기로 넘어가서 집중해 보기로 한다. 
이 대목은 다음과 같은 분석틀로 전개해 나갈 것이다. 
[첫째로] 아주 친절하게 이덕일 선생의 책인『고조선은 대륙의 지배자였다』를 예시例示로 들고 있으니
그 저서著書를 중심으로 글을 풀어나가겠다. 
[둘째로] 설명의 편의상 <앵무새>의 주장을 3단락으로 구분하였으니 위 글을 대조하면서 읽으면 편할 것이다. 

풋! 이란 소리는 아무데서나 뱉는 게 아니다. 
이 장章을 읽으면서 말미末尾에 이르면 바로 그 웃음이 허파에서 바람 빠지는 소리라는 걸
저도 모르게 자각自覺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얼굴은 안 뜨거워졌을까?

선생의 주장들을 가지고 바보 같은 사람들이나 바보처럼 난독증에 걸려 멍청하게 이해하였다는
명백한 사실을 필자筆者가 이미 다른 [반론]에서 충분히 피력하였다. 
서점書店에서 잠깐 훑어보고 와서 수박 겉핥는 식으로 비평을 하니
『책이 없으니 꼭 집어서 씹어줄 수가 없다』는 쓸데없는 푸념이나 늘어놓고 있는 경망스러움이 진동한다.

필자筆者의 졸견拙見으로는 서두序頭에 언급한대로 [일제관학자日帝官學者들이나 두계학파]의 주장이 지니고 있음직한
[반도사관]의 숨은 의도와 그런 인식 아래에서 창조된 괴이한 이론의 근본적인 모순을 밝혀내는 게 핵심 논제이기 때문에

1) [한사군漢四郡]의 위치가 한반도 및 평양 일대가 아니다.
2) 만조선滿朝鮮은 단군조선의 제후국이었다.
3) 처음부터 단군조선은 요서遼西-요동遼東 일대(지금의 요하遼河지역이 아닌 필자가 누누이 언급한 훨씬 서쪽방면이다)에 존재했다가
요서遼西의 일부분을 잃었다가 다시 회복했다.

라는 견해가 이제는 거의 확고하고 명료하게 [재야사학계]에서는 정립되어 가고 있다는 점을 먼저 밝혀둔다. 
따라서 이러한 관점에서의 역사논증은『어차피 그런 점은 중요하지 않습니다』가 아니라
그동안 <유사식민사학자>들이 주장하는 모든 학설들을 근본적으로 뒤집어 놓을 수 있는 매우...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그게 왜 그런지는 글을 읽어나가면서 자연스럽게 알게 될 것이다.

[3-1 단락] 수성현遂城縣*갈석산碣石山*요수遼水의 위치 문제에 대한 진실 찾기

이 부분에서 수성현遂城縣과 갈석산碣石山에 관한 [앵무새]와 <이덕일> 선생과의 견해 차이를 보다 면밀하게 검증하기 위해서는
원전原典 기록의 비교분석과 [앵무새]의 주장 그리고 선생의 의견에 대한 상호교차대조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가. 주요 논점論點 1

[원문原文]

태강지리지에 전하기를『낙랑 수성현에는 갈석산이 있으며 장성이 여기서 시작한다』 
太康地理志云 樂浪遂城縣有碣石山 長城所起 
태강지리지운 낙낭수성현유갈석산 장성소기 
<사마정司馬貞 사기색은史記索隱 태강지리지太康地理志 인용>


[이덕일 선생 견해]

사기史記 태강지리지太康地理志에는
『낙랑군 수성현에는 갈석산이 있는데 (만리)장성의 기점이다.  樂浪遂城縣有碣石山 長城所起』라는 구절이 있다. 
따라서 수성현과 갈석산을 찾으면 낙랑군의 위치는 저절로 밝혀진다. 
<조선일보  연재 컬럼>

낙랑군의 위치를 찾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갈석산碣石山이다. 
사기 하본기夏本紀에 인용된 갈석에 관한 태강지리지의 주석에 그 단초가 나와 있다. 
『낙랑군 수성현에는 갈석산이 있으며 (만리)장성의 기점이다.  樂浪遂城縣有碣石山 長城所起』라는 구절이다. 
곧 갈석산이 있는 곳이 낙랑군이며 바로 만리장성의 기점이라는 것이다. 
<고조선은 대륙의 지배자였다.  106-107p>

[앵무새의 주장]

저렇게 써놓으면 [태강지리지]가 [사기]의 일부분처럼 보입니다. 
역사학자가 되어가지고 이렇게 엉터리 출전을 쓴다는 것을 저는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태강”은 진晋나라 무제(사마염)의 연호로 280년에서 289년까지 사용되었습니다. 
[태강지리지]는 이때 만들어진 책으로 실전失傳된 책입니다.

[필자筆者 의견]

<이덕일> 선생의 논제는 매우 명확하다. 
인용된 두 기록의 문맥이 거의 동일한 가운데
낙랑군樂浪郡의 위치를 규정하는 검증방법을 핵심 주제로 삼고 있는 정황이 뚜렷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전거典據로서 [태강지리지太康地理志]를 들고 있다.

허나 우스운 것이 지금 [앵무새]는 낙랑군樂浪郡 수성현遂城縣과 갈석산碣石山 문제를
같은 주제로 언급하면서도 이런 핵심보다는 먼저 [태강지리지太康地理志]의 저작著作 년대나 인용 출전出典의 모순을 건드리고 있다. 
마치 엉뚱한 수풀 속에서 잃어버린 열쇄를 찾고 있는 꼴이다.

아울러 선생의 기록들을 비교해보았을 때 분명히 이런 사실(史記의 태강지리지太康地理志 인용 문제)을 알고 있었으며
(이는 조금만 관심 있는 역사학도라면 기본적으로 알고 있다)
이런 관점을 자신의 견해가 그대로 표현되는 [고조선은 대륙의 지배자였다]를 빌어 완전하게 기술해주고 있다.

또한 [컬럼] 특히 신문기사 게제의 속성상 대담자對談者의 이야기를 받아 적어 편집하는 과정에서
기자들이 이를 함축하거나 잘라 내거나 취사선택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는 걸 [앵무새] 자신이 더 잘 알 터인데
왜 이런 고의적인 망발을 저지르는가? 

그렇지만 정말 중요한 건 이게 아니다. 
이 대목에 들어와서는 호들갑을 떨며 파닥이던 [앵무새]도 조금은 정신을 차리고 길을 제대로 찾아 온 듯하다. 
이야기를 한번 들어보자. 
본문本文은 이렇다.

(계속)


최고관리자 15-12-04 14:28
 
아~ 앵무새요
유사역사학 마크를 달고 조직적으로 자국 역사를 말살하는 주범
http://orumi.egloos.com/
http://news.nate.com/view/20080901n22320
이곳을 대수맥님이 응징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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