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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5-12-03 15:30
첨성대에서 보는 별자리와 경주 고분 및 유적들
 글쓴이 : 최고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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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첨성대에서 보는 별자리와 경주 고분 및 유적들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4862

첨성대

경주 여기저기 있는 수백 개 고분, 첨성대와 불국사, 안압지 등 주요 유적들은 왕도 경주의 혼이나 다름없다.
대릉원 등 잘 알려진 30여 고분은 황금관과 철검 같은 보물을 품고 신분을 감싼 채 경주시내 반월성 옆에, 어떤 것들은 경주 외곽, 산꼭대기, 바닷속까지 퍼져 있다.
그리고 왕궁터 바로 옆에 첨성대가 있다. 첨성대는 왕궁 직속기관이었다.

경주 여행을 하다 보면 오랜 기간 이렇게 모양을 잡고 있는 그들의 존재 저 끝에 어떤 암호가 있는 건 아닐까 생각이 들기도 한다.
첨성대를 바라보는 반월성 앞 계림의 숲에서 불현듯 경주이야기를 써보고 싶은 열정이 생겨났었다.
눈 닿는 곳마다 솟아있는 고분이 총총히 눈에 들어오는 밤, 신비로운 곡선의 첨성대 옆길로 지나갈 때 천마총의 천마가 밤하늘에서 눈앞으로 다가오는 듯했다.

그것은 첨성대 매점에서 파는 손수건에 그려진 천마를 보고 떠올린 단순한 것이기는 했다.
하지만 나중에 '첨성대를 중심으로 경주의 왕릉과 중요 유적들은 하늘의 별자리가 그대로 지상에 내려와 앉은 것처럼 모양새가 일치한다'고 이용환 울산 MBC PD가 말하는 것을 들었을 때, 그 느낌은 되살아나고 첨성대에 관한 새로운 연구를 접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 첨성대를 기점으로 한 경주의 왕릉 및 건축물이 별자리와 일치하는 도읍이야기 <첨성대 별기>의 연출자 이용환 울산 MBC PD ⓒ 이순희

울산 MBC의 다큐멘터리<첨성대 별기>(이용환 연출)는 2009년 12월 방송되었다.
여기에는 그간의 학자들의 연구를 통한 여러 사실을 재조명하면서 경주시내 유적이 별자리를 본뜬 것이라는 놀라운 주장을 하고 있어 흥미진진했다.
첨성대를 보는 시각이 전보다 넓어지고 전에는 상상도 못하던 세계가 펼쳐졌다.

생각 없이 볼 때는 기하학적 모양과 오래된 돌 건축이 주는 느낌뿐이던 첨성대가, 그야말로 별빛 찬란한 속에 미동도 않고 버티는 학문적 진리, 천문학 그 자체로 보이고 비밀이 조금씩 언급된다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

▲ 첨성대를 볼때 시각적으로 가장 특이한 형태는 1단부터 24단까지는 회전곡면을 이루며 그 위 27단까지는 직선으로 이루어졌다. S자형 회전곡면은 태양 그림자 길이의변화로 알 수 있는 황도의 곡선을 수직으로 세워 나타낸 것으로 보인다. ⓒ송민구

기본 사실 중의 하나는 첨성대 모양과 첨성대 건축이 가리키는 동지일출선에 관한 것이다.
이 사실은 건축가이자 전 서울공대, 성균관대 건축과 교수 송민구의 1980년 첨성대 논문에서 처음 밝혀졌다.

"회전곡면을 이루는 첨성대의 곡선은 태양이 원을 그리며 도는 궤도, 즉 황도의 곡선을 따온 것이다.
동지, 춘추분과 하지를 정점으로 하는 그림자 관측으로 신라인들은 황도가 그리는 곡선을 쉽게 알아냈을 것이다.
또한 첨성대 꼭대기 정자석(井字石)과 바닥의 초석 및 지대석의 두 모서리는 동남동 30도 가까운 동지일출선과 정확히 일치한다"라고 제시했다.

"그 선상에 김유신묘, 선덕여왕릉과 불국사 석굴암, 문무왕릉이 위치하는 웅장한 장사(葬事)구도가 드러난다. 우연이라고 볼 수는 없는 것이다"라고 그는 단언했다.

▲ 송민구 교수의 연구 : 첨성대 정자석과 초석 및 지대석의 두 모서리를 정확하게 지나는 동지 일출선 및 여타 방위들('한국의 옛 조형의미'에서 인용) ⓒ송민구

"동지일출은 그날 이후 해의 고도가 상승하기 때문에 신라인에게 새로운 시작으로서 매우 중요했다.
신라 조영물의 상당수가 동남동 30도 각도의 일출 방향을 향하고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라는 송민구의 주장은 계속 이어지며 첨성대 전체를 분석하는 것이 되었다.

그의 첨성대 논문이 실린 <한국의 옛 조형의미, 1987>은 천문관련 어려운 수학공식이 많이 나오지만 인문적인 얼개를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송민구 : 1920-2010. 서울 공대·성균관대 건축과 교수, 경복고 수학교사, 건축가협회장 등을 역임. 주요 건축으로 동국대 본관, 서강대 도서관 등이 있다.
저서로 "첨성대가 지닌 의미"라는 제목의 논문이 포함된 <한국의 옛 조형의미, 1987>가 있다).

'첨성대가 왕릉을 정하는 기준점으로 별자리와 관련이 있다'는 주장은 왕릉이나 주요 건축물이 어떤 천재지변으로 자리가 유실됐다 해도 언제든 원위치를 되 확인하기 위해 천문관측이 필요했다는 것이다.
또 일출의 정확한 때로부터 1년의 길이를 측정하고 달력의 제작과 시간의 예보, 별자리에 보이는 특별한 현상이 왕과 국가에 관련된 길흉 여부를 점치기, 중요한 위치측정 등 다양한 업무는 정치, 왕권, 종교, 이념 등에 직결되는 것이기도 했다. 담당자들은 목숨을 걸고 하는 일이었을 것이다. 그런 일에 첨성대가 기준역할을 했다.

그 목적은 천문관측 외에도 상징이나 기념비적인 것도 있지만 본질은 후손들이 길이 보존하며 그 정신을 계승시키기 위한 국가이념에 있었다.
도읍 건설은 그런 것이다.
<첨성대 별기>의 제작은 이 논문에서 출발한 것이기도 했다.

▲ 정기호 교수의 연구 : 첨성대를 기점으로 동지일출선이 지나는 축에 석굴암이 동향해 있고 선도산 기점 동서 위도가 교차하는 지점에 첨성대가 있음을 제시했다. ⓒ정기호

그런데 첨성대 기점 동지일출선에 관해서는 송민구의 천문관측의 관점과는 달리 조경학자의 입장에서도 연구되었다.

조경학자 정기호 성균관대 교수는 1991년 "경관에 개재된 내용과 형식의 해석" 논문에서 "일출 방향을 향해 나 있는 석굴암과 선덕여왕능이 첨성대의 동지일출선 축과 일치하며 선도산에서 비롯된 동서 위도선과 동지일출선이 교차하는 지점에 첨성대가 있음"을 살폈다.
그는 "주어진 자연현상의 한 특징을 포착하여 그 위에 석굴암 등 조형물을 극히 계획적으로 앉혀 놓았다. 첨성대는 국가체제 수립과정에서 왕도 건설의 의도적인 축 설정과 관계되어 있다"고 했다.

<첨성대 별기> 프로그램이 찾아낸 첨성대 관련 자료는 광범위한 것이었다.
별자리와 방위를 찾아 점을 치는데 쓰던 식점반의 출현과 1963년 홍사준 유문룡의 첫 실측, 이동우·김장훈 교수의 노력으로 뒤늦게 보존된 실측도면, 일본인 나카무라의 첨성대로부터 왕릉 간 거리의 규칙성연구, 풍수지리, 유태용 교수의 고려 척 확인, 정태민의 고천문 연구 등이 연이어 거론됐다.

결정적으로 고구려 시대의 천문도 '천상열차분야지도'가 등장했다.
첨성대와 이 천문도가 결합되면서 새로운 국면이 전개되기 시작했다.
<첨성대 별기>는 경주의 왕릉, 유적 상당수가 하늘의 별자리 모양과 일치하는 현상을 제시하고 있으며 이런 주장은 최초의 것이다.

그 내용을 요약하면
지상에서의 천문관측 기점인 첨성대는 하늘에서 방위 기준이 되는 견우별(알테어, 알타이어)이고,
대릉원과 쪽샘지구는 천시원(하늘의 시장이라는 뜻)별자리 영역에 든다.
대릉원 내 97호 고분과 미추왕릉은 천시원 가운데 있는 후(侯), 제좌(帝座)란 별과 크기와 방향, 위치가 같다.


▲ 대릉원 일대의 고분들을 연결하면(윗부분) 천상열차분야지도에 나와 있는 천시원 별자리(아랫부분)와 모양이 일치한다.
97호분과 미추왕릉은 천시원 중간에 있는 별 후(侯), 제좌(帝座)와 방향, 위치, 크기가 같다. ⓒ이용환

반월성 앞 넓은 뜰은 직사각형 비슷한 별자리 천전(하늘의 밭)과 실제 모양이 같다.
천전은 임금이 있는 도성 안의 밭을 뜻한다.
반월성은 구감(물이 흘러가는 도랑처럼 모든 것의 근본이란 뜻),
안압지는 천연(하늘의 연못),
포석정 또한 천원(하늘의 동산)이라는 별자리와 모양이 일치했다.
첨성대 별기는 별자리와 유적사진의 대비를 통해 그 주장을 펴나간다.

▲ <천문유초>(이순지 원저, 김수길·윤상철 공역)에 제시된 우수(牛宿 , 28수 가운데 하나) 별자리에 들어 있는 견우, 천전, 구감은 각각 첨성대, 반월성 앞 벌, 반월성 자리와 일치한다. ⓒ이용환

'천상열차분야지도'는 고구려 평양성에 있다가 조선의 건국자 이성계에게 전해진 통치 자료이다.
'하늘에 있는 별자리를 분야별로 죽 펼쳐 보인다'는 뜻의 천문도인데 이만한 별자리를 기록하는 데는 적어도 500년 이상의 관측이 축적된 결과라고 한다.
별자리의 변형된 모양으로 보아 그 제작연대는 고구려보다 훨씬 더 거슬러 고조선 시대로 올라간다고 보기도 한다(정태민, 박명순의 연구).
1984년에 국보로 지정되었다.
학계에 일반적으로 공개된 것도 이즈음이었다.

▲ '천상분야열차지도'의 탁본. 평양성에 있다가 조선 시대로 전해진 제왕의 통치 자료이다. 우리나라가 자랑하는 '고천문도'로서 국보이다. ⓒ성신여대박물관 소장

첨성대는 647년경 선덕여왕 때 세워졌다.
경주 황룡사가 지어진 것과 거의 동시대에 지어진 것이다.
첨성대 건축에 고구려 자가 큰 오차 없이 기준이 된다는 것은 유태용 한양대 교수가 실험해서 밝혀냈다.

고(故) 홍사준 경주박물관장은 '황룡사 구층탑을 세운 아비지 일족이 첨성대를 지었을 것'이라는 의견을 보인 적이 있다.
근거가 없는 것이라 정설로 받아들여지지는 않았어도 '아비지'는 백제의 천재 건축가였다.
현재 첨성대는 계속되는 부동침하 등으로 약간 일그러진 상태이지만, 그 형태는 굉장히 안정적인 건축구조이며 1400년 가까이 거의 원형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놀라운 일이라고 한다.

그런데 '천문에 있어 백제가 고구려 신라보다 뛰어났다'고 송민구는 논문에서 지적했다.
그 예로 도읍을 정하는 데는 북극성의 고도 측정 등 특별한 천문관측 결과가 적용되는데, 부여에서는 정확한 일남중(태양이 정남에 오는 때) 고도를 1년에 두 번 춘·추분에 측정할 수 있었다고 했다.
평양이나 경주보다 더 정밀한 관측을 할 수 있었기에 천문지식에 있어서 고구려 신라가 백제에 미치지 못했다는 것이다.

조선 시대 초까지도 그런 천문 이념이 존재했으리라고 한다.
세종대왕 때에는 천문학자 이순지의 <천문유초>가 저술되었다.

이용환 PD는 <삼국유사>에 '첨성대관련 기록이 별기에 전한다'고 한 것은 그 책이 불교공인 이전의 신라 토속 종교와 학문에 관한 책일 것이라고 보았다.

첨성대에서 명활산성, 선도산성, 남산성이 일정한 거리에 있다는 것은 일본인 나카무라가 처음 주목했다.
<첨성대 별기>를 제작하면서 실측한 결과 명활산성(동), 선도산성(서), 남산성(남)이 첨성대로부터 각각 3.2km, 3.5km, 3.9km가량 떨어져 둘러싸고 있다.
이 PD는 4방위 중 북쪽에 있는 방위로서 봉황대를 덧붙였다.
봉황대는 신라고분중 형태가 가장 큰 무덤이다.
 '첨성대는 그 안의 평지에 이등변 삼각형 공식과 같은 개념으로 자리한다'는 것이다.

'신라인 박제상이 쓴 책 <부도지>에 묘사된 것처럼 4부에 단을 세우고 그 마름모꼴 한가운데 평지에 천대를 쌓았다는 것이 후일 첨성대를 세운 이 자리를 말하는 것'이라는 해석도 따라붙었다.

▲ '다음 뷰'에서 본 첨성대 기점 동쪽의 명활산성, 서쪽의 선도산성, 남쪽의 남산성과 북쪽의 봉황대는 각각의 거리가 대체로 일정하다.
첨성대는 이들이 둘러싸고 있는 자리의 평지 안에 이등변삼각형 함수를 나타내는 자리라고 한다.ⓒ이용환

서양에서는 이집트 기자 피라미드 세 개가 오리온 별자리의 삼태성별과 방위각이 같다고 하는 그레이엄 핸콕의 저서 <신의 지문>이 있다.
앙코르와트 사원 또한 용의 별자리를 닮았다는 것이다.

"한국의 고대에 사람들은 뭐든지 별과 함께 생각했다고, 이집트 피라미드 같은 천문개념이 있었으리라 보았습니다.
첨성대와 천상열차분야지도가 그 열쇠가 되었습니다.
천문을 통치에 이용하기 위해선 기구가 있어야 했을 테니까.
'송민구 선생 등 학자들이 저랑 비슷한 생각을 이미 30년 전에 논문으로 발표하셨구나' 하여 구체적 내용을 알게 되고 첨성대의 비밀을 알아내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첨성대 별기> 제작은 3년이 넘게 걸렸다.
이용환 PD는 <첨성대 별기> 제작 과정을 기록한 책에서 "반월성을 남천과 형산강이 둘러싸고 흐르고 있는데 천시원을 지나가는 은하수의 위치와 그 모양이 비슷한 것 아닌가.
이것들을 확인하면서 전율이 왔다.

경주는 신라왕릉 등 별자리를 지칭한 유적을 가진 세계 유일의 도시가 될 것이며, 앞으로 경주의 운명은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고 했다


최고관리자 15-12-03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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