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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9-03-20 10:55
박창범교수, <단군세기> 오성취루기록 사실 재확인
 글쓴이 : 최고관리자
조회 : 209   추천 : 0  

* 박창범교수, <단군세기> 오성취루기록 사실 재확인

http://m.koreahiti.com/news/articleView.html?idxno=3546

- 고등과학원 박창범 교수 통해 강단주류사학계가 식민사학임이 다시 밝혀졌다.

식민사학계, 전통과학도 중국 한나라 식민지 한사군 통해서 시작되었다고 왜곡, 날조
박창범 교수, 고인돌 등 연구해보니 최소 단군조선시대부터 우리전통과학 존재

<단군세기> 홀달단군 오성취루는 실제 일어난 것

▲조선개국4352.03.19. 서울 종로구 태화빌딩에서 제22차 대동재단 역사강연이 있었다.
  박창범 고등과학원 교수가 <단군세기>홀달 단군조에 나오는 오성취루기록이 사실이라고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었다.
  사진에 '단기세기'라고 되어 있으나 '단군세기'를 잘못 쓴 것이다.

우리민족 역사를 전하는 <한단고기>라는 문헌이 있다.
약 9천년전의 한국桓國시대부터 고려말 명나라 정벌하러 가는 것 까지 전하고 있다.

여기에는 <단군세기>라는 책도 합본되어 있다.
<단군세기>는 단군왕검부터 시작하여 마지막 단군인 고열가까지 2096년 단군조선 역사를 전하고 있다.

<삼국유사>에는 고조선편 맨 앞에 나온다. <위서>와 <고기>를 끌어다가 이야기 형태로 압축해서 전하고 있다.

<제왕운기>에도 단군조선이 나오나 시구절 형태로 아주 간단하다.
주석도 있지만 자세하지 않다.
<단군세기>가 조선역사를 가장 자세하게 다루고 있는 셈이다.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 소속 친일사학자,
두계 이병도 등의 후예들이 우리 역사학을 장악하고 있다는 것은 이미 귀가 따갑게 증명되고 있다.

이들의 학문은 일본제국주의 황국사관을 골격으로 하고 있다.
오늘날 독도가 일본 땅이라고 우기는 일본극우파 역사관이다.
다른 말로는 식민주의사관이라고 한다.

황국사관과 우리 역사는 상극이다.
우리역사를 일본 제국 지방사로 만들 목적으로 나온 것이 식민주의 역사관이다.

일본역사가 2천6백여년이다.
우리역사는 단군조선 역사만 보더라도 4352년이다.
이 장구한 역사를 일본제국 지방사로 만들어야 했으니 당연히 우리역사를 축소해야 했다.
단군을 신화, 전설로 해야 일본 역사 발아래 놓을 수 있다.

<삼국유사> 고조선 첫 편에 나오는 단군왕검이 개국한 조선을 그래서 신화로 둔갑시겼다.
오늘날도 이것이 사실인양 통용되고 있다.

국사책에는 역사인 것처럼 나오지만 국사책을 쓴 주류 강단사학계는 역사로 보지 않는다.
대표단체가 우리역사학계를 주도하는 한국고대사학회다.

서울대 국사학과를 나와 현재 한국교원대학교 교수로 있는 송호정이라는 인물이 있다.
그도 이 단체 중견회원이다.
그는 지난해 개천절을 앞두고 교육방송에 나와 단군을 신화라고 했다.
일제 조선총독부 대변인 노릇을 했다.

국사책에 단군조선이 서기전2333년에 세워졌다고 나오는 것은
서기1970~80년대 국사찾기협의회 활동 등 역사바로잡기 투쟁의 결과다.
 
▲박창범 교수는 고인돌이 우리 역사에서 갖는 중요성을 전했다.
  우리 고대역사를 푸는 핵심이라고 강조한다.

그러니 이들에게 단군조선 2096년 역사를 상세하게 전하는 <단군세기>가 눈에 가시일 수 밖에 없다.

<단군세기>를 인정하는 순간 평생 쌓아온 학문연구가 한순간에 휴지조각이 된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단군세기>를 가짜로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한 천문학자가 나타나 <단군세기>기록이 역사라고 밝혀버렸다.
전 서울대 천문학 교수였고 현재는 고등과학원 교수로 있는 박창범 교수다.

박 교수는 이날 <단군세기> 홀달단군조에 나오는 오성취루 기록이 사실을 담은 것이라고 밝혔다.
무려 서기전 1733년의 일이다.
홀단단군조 기록이 역사임이 드러난 것이다.

실제 오성이 모인해는 서기전1734년 7월 30일로 나타난다.
박 교수는 1년정도 오차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고 한다.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면 오행성이 어느정도 결집해야 오성이 모였다고 할 수 있는가.
이 당시 모인 각도는 10도라고 한다.
10도 정도안에서 다섯 개 행성이 모였다.

하늘에 복원해 보면 1열로 나란히 모여 있는 것이 확실하게 보인다.
어느 누가 보아도 눈에 확들어올 수 밖에 없다.
별들이 밀집하여 나란히 줄 서 있는 것이다.

서기전 1733년 경 너무나 선명하고 특이한 천체현상이 며칠 동안 장관을 이루었으니 기록으로 남긴 것이다.

박교수는 이날 오성취루 기록이 사실임을 이렇게 표현했다.

“오성결집현상은 짧게는 20년 정도에서 한번씩 일어나지만,
오행성이 궤도운동을 하다보면 우연히 아주 좁은 각도내에 모이는 경우가 있다.
그것이 하필이면 단군조선 1년부터 주욱 계산을 했을 때(13세 홀달단군, 무진50년, 서기전1733) 1년 이내에 실제 그런 현상이 일어났다.
아주 흥미로운 결과였다.
오행성 결집이 실제로 있었고 당시 본 사람들이 상당히 인상적이었을 것이다.
우연히 기록을 남기기도 어렵다.”

이에 식민사학계에서는 다른 천문학전공자들을 동원하고 자체 분석을 통해서 박 교수 연구성과를 잘못된 것으로 몰아갔다.
이들의 전위대로 ‘맹활약’ 하고 있는 인물이 소설가 이문영, 카톨릭대 조교수로 가 있는 기경량 등이다.

단군기원을 확정할 수 없다는 것이 대표 반박근거다.
또 다섯 개 행성이 모이는 것 자체를 가지고 박 교수 연구를 무력화 시키려고 한다.
오행성 결집은 어느 때나 일어날 수 있다고 하고 임의로 얼마든지 만들어 맞출 수 있다고 한다.

단군기원을 확정할 수 없는 문제는 박 교수도 일단 인정한다.
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단군세기>에 이미 무진년(서기2333)에 조선을 세웠다고 못 박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단군기원, 단군원년이다.

박 교수도 단군기원 확정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홀달단군시기에 오성이 모였다는 사실을 뒤집지는 못한다고 못박았다.

식민사학계의 반박이 본질을 벗어난 비판을 위한 비판이라는 것이다.
식민사학계가 하는 비판방식을 식민사학계 자신들에게 들이대면 역시 살아남을 이론이 없다.

대표사례가 중국 한나라 식민기관, 한사군설이다.
저들은 한사군은 존재했으며, 북한 평양을 중심으로 4백년이 넘는 동안 우리를 식민통치했다고 한다.

최초로 기록하고 있는 <사기> 조선열전에는 4군이라는 말만 나오지(以故遂定朝鮮為四郡),
낙랑, 현토, 임둔, 진번이라는 이름이 나오지 않는다.
'조선을 평정해서 사군으로 삼았다'는 아주 짧은 문구만 나온다.

그런데 어찌된 것인지 수백년이 흐른 뒤에 자세하게 나온다.
현장에서 본 사람은 말이 없는데 거의 2백년 흐른 뒤의 사람이 마치 현장에서 본 것처럼 얘기하고 있다.
반고가 서기82년에 썼다는<한서>가 대표 사례다.

한사군은 식민사학계의 학문뿌리다.
이것이 허위로 드러나면 식민사학계의 학문은 모두 허물어져 버린다.
 
▲박 교수는 이날 고인돌이 단군조선을 증명하는 핵심 증거라고 보았다.
  고인돌에 새겨진 별자리는 리조선시대로 이어지고 있다고 했다.

<단군세기> 홀달단군조의 오성취루 기록은 실제 일어난 역사로 밝혀지고 있다.
저들이 떠 받드는 한사군 기록보다 훨씬 신빙성이 있고 역사사실로 드러나고 있다.

실상이 이런데도 저들은 <단군세기>를 역사로 보면, 유사역사학, 사이비역사학이라고 비난한다.
‘환빠’, ‘국뽕’이라고 조롱한다.

박 교수는 문헌사료가 부실하다는 강단식민사학계의 비판을 의식했는지, 다른 방법을 찾아 나섰다고 했다.
고고학적 근거를 대겠다는 것이다.

<단군세기> 홀달단군조 천문현상 기록을 못 믿겠다면 다른 것을 들겠다며 고인돌을 제시했다.
고인돌에는 성혈이라고 하여 별자리가 새겨져 있다.

강단식민사학계도 고인돌은 청동기시대 유물로 보고 있다.
남한은 상한을 서기전 15세기 경으로 보고 있다.

송호정 같은 인물은 서기전 10세기 이내로 고집하지만 대체적으로 서기전 15세기경 까지 올리고 있다.
지금부터 약 3천5백년 전이다.
이 시기에 나라가 있었다면 단군 조선밖에 없다.

대한강토에 고인돌이 집중되어 있다.
전세계 고인돌 70%가 있었다고 한다.
박 교수에 따르면 현재는 50%로 나오는데 계산 착오가 아니라, 그동안 파괴하고 없애 버렸기 때문이라고 한다.

중장비가 발달하다보니 예전에는 돌아갔는데 이제는 들어서 다른 곳에 버리거나, 없애 버렸다고 한다.
 
▲충북 청원에서 나온 아득이 고인돌 별자리 돌판. 이제까지 발굴된 별자리 중 가장 정교하고 많이 나온 것으로 밝혀졌다.

충북 청원에서 발견된 아득이 고인돌에서 나온 별자리 석판에는 정교하게 수 많은 별자리가 새겨져 있다.
또 경남 지방 고인돌에도 북두칠성, 남두육성 등 별자리가 무수히 새겨져 있다.

단군조선시대를 나타내는 고인돌에 천문도가 나온다.
<단군세기> 홀달단군조 서기전1733년에 다섯 개 행성이 모였다는 기록있다.
이것도 천문기록이다.
고인돌 천문도는 이 기록이 사실임을 뒷받침하고 있다.

박교수는 고인돌 별자리에서 끝나지 않고 삼국시대에 나타나는 천문도와 <삼국사기>일식기록 등 천문기록 및
고려시대, 조선시대 유물 유적에서 나오는 천문도를 함께 다루었다.

시대를 달리하지만 고인돌에 나타나는 별자리가 조선시대까지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는 고인돌에 별자리를 새긴 사람들과 조선시대 별자리를 새긴 사람들이 다르지 않다고 했다.

우리가 고인돌 별자리 새긴 사람들의 후손이라고 했다.
고인돌 사람들이 어느 순간 사라지고 외부에서 다른 사람들이 들어와 역사를 이은 것이 아님을 분명히 못박았다.

그는 또 식민주의 사관의 핵심 중의 하나인 ‘삼국사기 초기기록 불신론’도 타작했다.
<삼국사기> 초기기록에 나오는 고구려, 백제, 신라 역사를 믿지 못하겠다는 것이 ‘삼국사기 초기기록 불신론’이다.

조선총독부 일제학자들이 만들었고 현재 국내 강단식민사학자들이 목숨걸고 지키는 식민사관 학설이다.
삼국초기 기록은 나중에 꾸며낸 이야기라고 한다.
근거로 지금 시각으로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들을 든다.
이 학설도 현재 한국고대사학회가 신봉하고 있다.

박 교수는 삼국 초기기록에 천문기록이 나오는데 그 중에 일식기록에 주목했다.
정확도가 중국보다 높게 나온다고 했다.
실현률이 가장 높다.

식민사학계에서는 중국 천문기록을 베꼈다고 한다.
그런데 중국기록에 없는 천문기록도 나온다.

‘태백주현’이 한 사례다.
태백성, 곧 금성이 낮에 나타났다는 기록인데 중국에는 이런 기록이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계산해 보니 실제 일어난 것으로 나왔다고 했다.

박 교수는 식민사학계가 천문기록도 중국에서 가져온 것이라고 한다며 천상열차분야지도도 부정하고 있다고 고발했다.

천상열차분야지도는 조선 태조, 리성계시기에 돌에 새긴 별자리다.
지금 전하는 것은 후대에 다시 새긴 것이다.
지도 아래에는 지도 유래를 적고 있다.

고구려에서 그린 것인데 여기에 리조선시기 별자리를 수정해서 집어 넣었다.
다만 주변 별자리는 고구려 별자리 그대로 남겨놓았다.

박 교수는 식민사학계에서 별자리 금석문인데도 안 믿는다고 개탄했다.
금석문은 문헌사료보다 더 사료가치가 있는 1차사료다.

식민사학계도 제일 가치 있는 사료로 친다.
그런데도 금석문인 천상열차분야지도를 믿지 않고 있다.
중국 것 보다 정교하고 정확하다는 것을 인정하기 싫은 것이다.

석판지도 설명문에서 자세하게 말하는 데도 안 믿는다며 씁슬해했다.
박 교수는 고구려 것임을 알리는 설명문을 천문학이론으로 증명했다.

지도 중앙은 리조선시대 하늘이지만 주변 별자리는 고구려시대 것임을 밝혔다.
또 중국은 별 크기를 구분하지 않고 그려놨는데 우리는 별의 밝음에 따라 크기를 달리해서 그려놨다고 한다.
이것만 보아도 누가 천문학이 발달했는지 알 수 있다며 식민사학계를 비판했다.
 
박 교수는 경주 첨성대가 천문관측 기구이면서 정교하게 설계 된 것도 밝혔다.
치밀한 계산하에 만들어진 것이 드러났다.

전체 돌을 합해보면 365개로 나온다.
27층으로 되어 있는데 달 주기라고 한다.
또 천원지방형태로 되어 있다.
동아시아 천문학이 모두 들어가 있다고 역설했다.

박 교수는 이날 천문학으로 역사를 찾는 일을 하게된 계기도 전했다.
고 라대일 박사하고 밤새도록 얘기하면서 라 박사가 제안했다고 했다.

라 박사는 삼국시기부터 천문기록을 가지고 사실인지 검증하자고 했다고 한다.
박 교수는 기왕이면 단군조선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 하기로 했다고 한다.

또 서울대학에서 고등과학원으로 자리를 옮기게 된 이유도 털어놨다.
서울대에 있을 때는 천문학 외의 잡다한 업무가 많아 온전히 천문학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고등과학원이 연구에만 몰두할 수 있도록 보장해서 옮겼다고 했다.

그는 천문학 자료 등 우리만의 강점이 많은 학문보고가 넘친다면서 전통과학을 살려 현대과학과 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는 이 두 개가 단절되어 있어 학문이 풍부하지 못하고 경쟁력도 떨어진다고 아쉬워했다.

박창범 교수는 홀달단군시기 오성취루 증명 발표로 학계를 발칼 뒤집어 놓았다.
특히 식민사학계에 큰 상처와 충격을 주었다.

20여년 전에 방송에 출현한 것을 끝으로 오성취루를 주제로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서기2017년 3월 코리아히스토리타임스에서 심층취재를 한 이후
이날 약 2년만에 오성취루 포함 한국 고천문학의 우수성을 주제로 공개강연했다.

강연이 끝나고 질의응답시간을 가졌다.
모처럼 만에 강연에 나서서인지 질문이 끝이 없었다.
허신행 전 농림수산부 장관이 사회를 봤는데 쇄도하는 질문을 받느라 정신이 없을 정도였다.

이날 강연으로 <한단고기> 위서 논쟁이 사그라질 것으로 전망된다.
물론 식민사학계는 막강한 기득권력을 이용해 끊임없이 가짜, 위서론을 퍼뜨리고 굳혀 갈 것이다.
그들에게는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오종홍 기자 mukto@naver.com


최고관리자 19-03-20 11:05
 
박창범 교수의 위대한 업적은 반드시 후대에 평가를 받을 것입니다.
복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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