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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5-25 16:09
평왜비(平倭碑) 그리고 장보고
 글쓴이 : 최고관리자
조회 : 4,124   추천 : 0  

[장보고, 평왜비 그리고 소흥, 진해 장군]

1. 강소성 "평왜비(平倭碑)"

"중국종교명성" 1989.10.1(ISBN7-220-00598-9/B43) 이란 책에서
강소성 남통시 남교에 "랑산"이 있는데 이 곳에 "평왜비"가 있다고 한다

☞ 평왜비 : 왜를 평정한 비석

2. 장보고의 아버지는 절강성 "소흥"사람

인동장씨대동보(仁同張氏大同普)나 장씨연원보감에 의하면
"장보고의 아버지는 장백익(張伯翼)이고 절강성 소흥사람으로 신라에 귀화한 사람이다."
이라 기록되어 있다.

3. 진해 장군 장보고

장보고는 여기서 과거 충복이었던 염장에게 피살 당하였다.(841년)

4. 당회요(唐會要)의 기록

819년 당(唐) 조정에 의해 지방행정 정비령이 시행될 때
절동관찰사(절강성 동부 관할) 설융(薛戎)이 당(唐)황제 헌종에게 올린 품의의 내용

* 당회요(唐會要), 권78 제사잡록(諸事雜錄)(상上) 원화(元和) 14년 8월조(條)

‘今當道望海鎭(금당도망해진)
去明州七十餘里(거명주칠십여리)
俯臨大海(부림대해)
東與新羅日本諸蕃接界(동여신라일본제번접계)
請據文不屬明州(청거문불속명주),
許之(허지).’

‘현재 우리 도(道)의 망해진은
명주에서 70여리 떨어져
바다를 내려다보는 곳에 위치해 있는데,
동쪽의 신라와 일본 제번(諸蕃)이 서로 경계를 접하고
문서를 통해 명주에 속하지 않겠다고 청원해 왔습니다.
이에 (황제는)허락하다.’

망해진은 현재의 진해(鎭海)이고
명주는 현재의 영파(寧波)인데,

바다 동쪽의 신라일본제번은 바로 주산군도를 의미한다.

* 자료 - http://v.daum.net/link/1845580

[지명 설명]

1. 정해위 : 고 지명이 '청해위'로 청해진으로 추정된다.
  - 현재 '완도=청해진'은 성립하기 어렵다.

2. 사, 연수 : 장보고 친구 정연이 돌아와 산 신라 땅

3. 소홍 : 장보고 부친 장백익씨 고향. 장보고는 여기서 태어났다.
  - 도대체 언제 신라로 귀화한 것일까?

4. 무령 : 장보고가 벼슬한 당나라 무령

5. 진해 : 장보고가 충복 염장에게 피살당해 죽은 곳

6. 임해 : 신라산이 있는 곳


* 삼국사기 권제44 (열전 제4)  장보고/정년
 
장보고(張保皐)<신라본기에는 궁복(弓福)으로 썼다.>와
정년(鄭年)<연(年)은 연(連)으로도 쓰기도 하였다.>은 모두 신라 사람인데,
그들의 고향과 아버지 할아버지를 알 수 없다.

두 사람 모두 싸움을 잘하였는데, [정]년은 특히 바다 속에서 50리를 헤엄쳐도 숨이 막히지 않았다.
그 용맹과 씩씩함을 비교하면, [장]보고가 [정년에게] 조금 뒤졌으나,
[정]년이 [장]보고를 형으로 불렀다. [장]보고는 연령으로,
[정]년은 기예로 항상 서로 맞서 서로 아래에 들지 않으려 하였다.

두 사람이 당나라에 가서 무령군 소장(武寧軍小將)이 되어 말을 타고 창을 쓰는데, 대적할 자가 없었다.

후에 [장]보고가 귀국하여 대왕을 뵙고 아뢰었다.
“중국을 두루 돌아보니 우리 나라 사람들을 노비로 삼고 있습니다.
바라건대 청해(淸海)에 진영을 설치하여 도적들이 사람을 붙잡아 서쪽으로 데려가지 못하도록 하기 바랍니다.”
청해는 신라 해로의 요충지로서 지금[고려] 완도(莞島)라 부르는 곳이다.

대왕이 [장]보고에게 [군사] 만 명을 주었다.
그 후 해상(海上)에서 우리나라 사람[鄕人]을 파는 자가 없었다.

[장]보고가 이미 귀하게 되었을 때에 [정]년(年)은 [당나라에서] 관직에서 떨어져
굶주림과 추위에 시달리며 사수(泗水)의 연수현(漣水縣)에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수비하는 장수 풍원규(馮元規)에게
“내가 동으로 돌아가서 장보고에게 걸식하려 한다.”고 말하니, 원규가 말하였다.
“그대와 [장]보고의 사이가 어떠한가? 어찌하여 가서 그 손에 죽으려 하는가?”

[정]년(年)은 말하였다.
“추위와 굶주림으로 죽는 것은 전쟁에서 깨끗하게 죽느니만 못하다.
하물며 고향에 가서 죽는 것에 비하랴?”

마침내 그곳을 떠나 장보고를 찾아 뵈니 술을 대접하며 극히 환대하였다.
술자리가 끝나기 전에 왕이 시해되어 나라가 어지럽고 임금의 자리가 비었다는 소식이 들어왔다.

[장]보고가 군사를 나누어 5천 명을 [정]년(年)에게 주며, [정]년의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면서
“그대가 아니면 환난을 평정할 수 없다.”고 말하였다.

[정]년이 왕경에 들어가 반역자를 죽이고 왕을 세웠다.
왕이 [장]보고를 불러 재상으로 삼고 [정]년으로 대신 청해를 지키게 하였다.


최고관리자 18-05-25 16:31
 
삼국사 전체를 통틀어
청해 '금지 완도'라는 단어는 오직 여기뿐이다.
누가 왜 이 문구를 넣었을까?
삼국사 원본은 보고싶다.

장보고 친구 정연이 산 곳은 바로 사, 연수 지역으로 지금도 지도에 버젖이 살아있다.
복본!
최고관리자 18-05-25 16:32
 
지금 완도에
1만명 군사가 자급자족할 공간이 있는가?
참으로 미스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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