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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영자칼럼
 
작성일 : 18-05-09 10:20
북한자료_일제어용사가들이 조작한 자료다!
 글쓴이 : 최고관리자
조회 : 3,044   추천 : 0  

* 점제현 신사비, 효문동종 일제 조작 고발 동영상 보기

http://allvod.sbs.co.kr/allvod/vodEndPage.do?filename=cu0214f0023900

* 239회 SBS 스페셜(2011.02.27)
- 3ㆍ1절 특집 SBS스페셜
- 역사전쟁 - 금지된 장난. 일제 낙랑군 유물조작

https://youtu.be/1L1QYO1g27Y

본 구리넷에서도
점제현신사비가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 금서룡이 새끼가 조작한 것이라는 자료를 공개하였고
북한은 핵분열측정법으로 분석하여 다른지방에서 옮겨온 조작품이라 발표하였다.

* 북한 사회과학원 자료 바로가기 _ 일제 어용사가들의 날조품


 (북한자료_사회과학원) 일제가 조작한 점제현 신사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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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제현 신사비는

1913~4년 조선총독부 고적조사단(일본놈 금서룡 등)이
중국 하북성 갈석산에 있었던 비석을 정으로 파내어
배로 평남 온천 앞바다로 실어와 해안가에서 사진을 찍어 놓고
이게 바로 한나라 낙랑땅이라는 증거라며 조작한 비석이다.

일본놈 금서룡이 조작한 이 비문을 근거로
해방후 70년이 지났는데 식민사학자 개넘들이
아직도 한반도내 한사군설 조작의 1호 근거로 드는 비문이다.

아래글 읽어 보시고 반드시 응징하세요!


* 북한의 정설 (사회과학원)

→ 일제의 조작품이다. 광석 성분분석을 해본 결과 조작품임이 밝혀졌다
→ 평양일대의 유물은 한의 낙랑유물이 아닌 최씨의 낙랑국의 유물이다

* 중앙일보 기사 내용

1995년 5월 24, 25일 이틀간 평양 인민대학습당에서
사회과학원장 김석형, 김일성 종합대학교수 박시형을 비롯한
북한 역사, 고고학계의 원로학자들과 연구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낙랑문화의 성격과 낙랑군의 위치에관한 학술발표회”가 열렸으며
이 자리에서 이같은 학설이 제기됐다는 것.

학술발표회 참가자들은 발제·토론을 통해
낙랑문화가 『고조선 사람들의 후예들이 남긴 문화』이고

「낙랑군 평양설」은
“고고학적으로 근거없는 주장이라는 것이 여러 각도에서 논증됐다”고 강조

30여편의 논문이 발표된 발표회에서는

또 그동안
“낙랑군 평양설”을 뒷받침하는 가장 중요한 근거로 제시돼온
“점제비(점제현신사비)”가
“날조품”이었다는게 밝혀졌다고 설명.


* (북한자료_사회과학원) 일제가 조작한 점제현 신사비

윗 사회과학원 자료중 “제4장  평양일대 락랑무덤의 성격”이라는 부분중
점제현 신사비 부분만 발췌 인용합니다

6) 점제비
(운영자 주 : 북한식 표현 그대로 인용합니다)

해방 전 일제어용사가의 두목이었던 이마니시는
1913년에 평안남도 온천군 성현리(해방 전의 평안남도 룡강군 해운면 운평동)에서
“점제신사비”를 발견하였다고 세상에 공개하였다.

[운영자 주 : 이마니시 = 윗 사진의 일본놈 금서룡을 말한다.
 일본에서 단군신화론 등 논문으로 박사학위 받는 등 역사 조작질 하다가 '급살'을 맞아 뒤졌다]

일제어용사가들은 이것을 유력한 근거로 내세우면서
점제비 곁에 있는 성현리 토성을 락랑군에 속하여 있은 점제현의 소재지라고 주장하였다.
 
점제현은 기원전 108년에 한 나라가 고조선을 점령하고
그 령역 안에 설치하였던 락랑군 25현 가운데의 하나이며

점제신사비는
이 현에서 풍년들기를 기원하여 호랑이 산신에게 제사 지냈던 산신당에 세운 비이다.
 
비의 높이는 1.35m, 너비 1.09m, 두께 0.12m나 되는 비교적 큰 화강석재의 비이다.

비의 앞면에는
팔분에 가까운 예서체로 쓴 79자의 글자가 한자로 새겨져 있는데
비문의 글을 우리 글로 쓰면 다음과 같다.
 

“원화 2년(기원 85년) 4월 무오일에 점제장 □□와 위, 건, 승, 속국이 모여서
<백성들을 위하여> 점제신사를 수리할 데 대하여 토의하였다.
□평산군 <산신인 호랑이>의 덕은 <높은 산인> 대산과 승산에 비길 수 있으며
위엄은 <우뢰와 같다>

점제고을을 도와 바람과 비를 잘 조절하고 땅을 기름지게 하며
백성들을 장수하게 하고 오곡이 잘 되게 하며 도적이 일어나지 않게 하고
<간사한 것이> 자취를 감추며 사람들이 드나드는 것을 길하고 리롭게 하고
모두 신광을 받게 하여달라.”
 

연대를 밝힌 글자들이 파손되여 정확히 판독할 수 없으나
이 비문은 후한시기 지방군현에서 산신숭배가 있었던 사실을 반영하고 있다.
 

 “후한서” 권 3장제기 원화 2년(기원 85년) 조와
같은 책 권 18제사지 제8의 기사에 의하면
이 해 1월 산천의 여러 신들을 제사지낼 데 대한 임금의 지시가 있었다.

점제비는 임금의 이 지시를 받고 그 해 4월에 세워진 것으로 보인다.
비문에 “4월 무오”일이라고 씌여져 있는데
원화2년 4월에도 무오일이 있으므로
그것은 기원 85년에 후한의 령역안에 세웠던 비라는 것이 명백하다.
 

그런데
최근 고고학연구소 연대측정집단이 점제비에 대한 화학성분을 분석한데 의하면
그것은
온천관입체의 화강암의 생성년대와 조성성분에서 많은 차이가 있다는 것이 검증되었다.


생성년대에서는 흑운모를 시료로 하여 핵분렬흔적법으로 측정한데 의하면

점제비 화강암의 생성년대는 1억 2천 9백만 년±1천 3백만 년이고
온천 화강암의 생성년대는 1억 4백만 년±1천 2백만 년,
오석산 화강암의 생성년대는 1억 백만 년±1천 2백만 년,
마영 화강암의 생성년대는 1억 7백만 년±1천 2백만 년이다.


이처럼 점제비 화강암의 생성년대는
온천과 룡강일대의 화강암 생성년대보다 2천 8백만 년~2천 2백만 년이다 더 오래다.

이것은
점제비 화강암이 그 근방의 화강암과는 돌 나이에서 완전히 구별되는
다른 지방의 화강암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점제비의 화강암은 조성성분에서도 온천관입체의 화강암의 것과 다르다.


점제비의 화강암은 온천관입체의 화강암에 비하여
연은 2배,
월프람과 연, 니켈, 석, 린은 각각 2배 더 많으며
바리움은 10분의 1정도 밖에 안 된다.
 

카리 분석 결과에 의하면
나트리움의 함유량이 점제비에서는 2.8인데
온천관입체의 화강암은 4.1이다.

이처럼 점제비의 석재와 온천관입체의 화강암은 그 조성성분에서도 많은 차이가 있다.

이상의 사실은
점제비는 온천과 그 근방의 화강암이 아닌
다른 지방의 화강암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지금도 온천과 그 근방에는 질 좋은 화강암이 많으며
평양일대에서는 그것을 많이 리용하고 있다.
 

그러면 왜
자기 지방의 석재로 만들지 않은 점제비가 온천 땅에서 나타났는가?

그것은 다른 지방에서 만든 것을 온천지방에 옮겨놓았기 때문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완)


최고관리자 18-05-10 10:33
 
이러한 북한자료를 조작하여 꺼꾸로 한낙랑군 재평양설 근거로 드는 역사사기꾼 넘들은 도대체 뭐냐?
하늘이 무섭지도 않으냐?
에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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